[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겉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공장이지만, 안에서는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
조지아주에서 올해 본격 가동을 시작한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한국인 아니면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지 직원의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미시간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었다”는 혹평, 삼성SDI-스텔란티스 합작법인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투명성이 전혀 없다”는 불신에 시달린다. 국내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좇아 수십조원을 미국 현지에 투자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한국식 경영 DNA’가 현지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 ‘최악의 직장’ 낙인 찍힌 한국 전기차·배터리 공장
1일 미국의 직장 평가 플랫폼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현직자들이 매긴 HMGMA의 평가 점수는 5점 만점에 2.9점,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생산법인은 2.8점,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2.4점에 그쳤다. 글로벌 주요 기업과 비교하면 크게 뒤처지는 점수다. 엔비디아는 4.6점, 마이크로소프트 4.1점, 애플 4.1점, 인텔 3.8점으로 집계된다. 현대차 경쟁업체인 도요타 미국 법인도 4.1점으로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직자들은 한국식 보고 중심 문화와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이 맞물리며 미국 공장 운영이 곳곳에서 삐걱거린다고 지적한다.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법인 리뷰에는 “생산 일정이 매일 바뀌어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끝없는 회의와 보고가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직원들을 기계나 소모품처럼 다룬다”, “보상과 인사에서 공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반복된다. 한 직원은 “공장이 겉은 화려한 튤립 같지만 속은 썩었다”고 표현했다. 회사의 외형은 번듯하지만 내부는 불신과 피로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다.
한국식 기업 문화와 미국식 노동문화가 충돌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삼성SDI와 스텔란티스가 합작한 스타플러스 에너지에 대해선 “미국에서 일하지만 결국 한국식 방식에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 “투명성이 부족하고 루머만 난무한다”는 평가가 달렸다. 리더십 부재와 불투명한 인사 운영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현지 직원들은 “승진이 buddy system(친분 위주)으로 돌아간다”, “한국 본사의 의사결정이 그대로 이식됐다”고 토로한다.
◇ 현지화 실패가 부른 인력난·조직 불신
현지화에 실패한 조직문화는 결국 사람을 붙잡지 못해 인력난으로 이어진다. 현대차그룹 HMGMA 리뷰에서는 “모든 부서에서 심각한 인력 부족이 있다”, “안전보다 생산이 우선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임금 수준도 다른 완성차 업체보다 낮다는 불만이 많다.
특히 “한국인이 아니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불평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국인 경영진이 주요 의사결정을 장악한 채 미국인 관리자의 권한을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한국 관리자는 비현실적인 요구와 일정을 강요한다”며 “차라리 모든 한국 경영진을 해고하고 미국인으로 채워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래스도어 같은 사이트 평가는 구직자들의 첫 번째 참고자료”라며 “낮은 평가는 글로벌 인재 유입에 직접적인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평판이 곧 기업 브랜드 자산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기업의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키워드는 ▲상명하복 문화 ▲투명성 부족 ▲워라밸 붕괴 ▲현지 직원 차별이다. 겉으로는 대규모 투자에 따른 고용 창출이라는 성과 덕에 지역사회에선 환영받지만, 내부에선 한국식 경영 관행이 미국식 노동·조직 문화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기업문화는 여전히 수직적 조직 구조와 장시간 근무, 경직된 커뮤니케이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본사 중심의 한국식 문화가 그대로 이식되면서 자율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국식 노동환경과 충돌하고 있다”고 했다.
◇ 美 노동계, 한국식 경영문화 정면 비판
문제는 이런 불만이 결국 인력 유출과 노조 갈등,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생산실적을 기반으로 지급되는 만큼 내부 조직 문제가 성과에 직결될 수 있다.
미국 노동계도 한국 기업의 노동문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9월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건설 중이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는 연방 당국의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4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체포됐다. 미국 내 단일 현장 기준 최대 규모 단속이었다.
사건 직후 기업 로비단체와 지역 상공계는 “무리한 단속이 제조업 프로젝트를 위축시킨다”며 우려를 표시했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달랐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성명을 통해 “문제의 근본 원인은 기업에 있다”며 현대차의 노동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노조는 최근 2년 사이 3명의 근로자가 현장에서 사망한 사고를 거론하며 “현대차는 업계 표준 안전 예방 조치를 무시하고, 이민자 노동력을 착취해 공장과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고 지적했다.
◇ “현지 존중 없는 투자는 지속 불가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이러한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에는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인상하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기업들은 현지 인력 활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고용 확대를 넘어 현지 인재가 회사를 떠나지 않도록 조직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해외 진출은 단순히 공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운영이 전제돼야 한다”며 “직무 성과 평가, 유연 근무제, 투명한 보상체계 등 자율과 책임 기반의 인사관리(HR) 제도를 도입하고, 현지 임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식 DNA의 강점을 살리되 글로벌 표준과 접목해야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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