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 수장에 이어 원전 공기업 CEO까지 총출동
러시아 의존도 높은 SMR 핵연료, 공급망 불안 심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2030년 포화···재처리 해법 시급
“군사용 20% 미만 저농축 허용 땐 핵잠수함 추진도 가능”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4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한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이동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4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한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이동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 착수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 발표문에 관련 문구가 담기거나 두 정상이 직접 언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원전업계는 이번 계기를 통해 소형모듈원전(SMR) 연료 확보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 ‘핵연료 주기 완성’이라는 숙원이 풀릴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외교·통상 수장에 이어 CEO 총출동

25일 재계에 따르면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교·통상 수장에 이어 산업·에너지 공기업 CEO들까지 미국에 총출동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연쇄 회동하며 개정 논의를 조율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도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

산업부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작사 설립이 공식 의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는 이 같은 인사 총출동이 곧 협정 개정 논의와 ‘팀 코러스(Team KORUS·한미 원전 동맹)’ 출범을 겨냥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팀 코러스는 한·미 합작법인 설립이나 컨소시엄 형태로 해외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구상을 의미한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건설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장치인 '캐니스터'. / 사진=연합뉴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건설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장치인 '캐니스터'. / 사진=연합뉴스

◇ 핵심 과제는 ‘핵연료 주기 완성’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의 자립적 핵연료 확보를 제약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20% 미만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 원전산업의 ‘핵연료 주기’는 미국의 승인 없이는 완결될 수 없는 구조다.

정부와 업계가 협정 개정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면 차세대 핵연료를 직접 개발·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SMR 등 미래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연료주기를 완성할 수 있다.

특히 SMR의 핵심 연료인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은 현재 러시아가 주요 생산국이다. 미국과 유럽도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나 아직 상용화 단계는 미미하다. 한국이 협정 개정을 통해 HALEU 생산 권한을 확보한다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 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시급하다. 현재 국내 원전은 원전 부지 내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고 있는데, 2030년 이후 대부분의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원전 운영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재처리·농축 허용은 원전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제주도 해군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핵추진 잠수함 USS 애너폴리스. / 사진=연합뉴스
제주도 해군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핵추진 잠수함 USS 애너폴리스. / 사진=연합뉴스

◇ 핵잠수함 논의도 직결

핵추진 잠수함 보유 문제도 협정 개정과 직결돼 있다. 전문가들은 핵잠수함 독자 건조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핵연료, 즉 농축우라늄 확보를 꼽는다.

현행 협정은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까지만 농축할 수 있고 군사적 사용은 금지한다. 미국 해군 핵잠수함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쓰지만, 프랑스의 신형 쉬프랑급(바라쿠다급) 핵잠수함은 5%가량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결국 농축 수준이 어떻든 한국이 핵잠수함을 운용하려면 협정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일본처럼 20% 미만까지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고 재처리 시설을 갖춘다면 핵잠수함 추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은 핵무기용 90% 이상 고농축이 아니라 프랑스식 20% 미만 저농축 연료를 추진체에 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또 “한국은 비핵화 선언을 했고 국제사회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 역시 해외에 의존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