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닉’ 사업 단점 수두룩···속도전 위해 공개 개발해야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핵잠수함은 ‘꿈’이 아닙니다. 기술은 됩니다. 이제는 정부가 당당히 공개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전직 잠수함 함장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와 저녁을 먹다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핵 추진 잠수함(핵잠수함)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본설계 단계긴 하지만 한화오션과 같은 방산 대기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컨소시엄을 이뤄 수년째 한국형 핵잠수함을 검토·설계해 왔다는 것이다. 사업은 대외적으로 ‘비닉(秘匿)’으로 분류돼 공식 확인은 어렵다고 했다. 

나의 다음 질문은 “지금 정부에서 할 수 있을까요?” 였다. 돌아보면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거다. “지금 공개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문 교수 말을 들어보면, 북한은 이미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다고 했다. 당장 핵잠수함 개발을 공개적으로 추진해 ‘속도전’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김정은은 2021년 핵추진 잠수함 설계 완료를 선언했고, 2023년 SLBM 10발 탑재 ‘김군옥함’ 진수를 주관했다. 작년엔 건조 현장을 직접 챙겼고, 북·러 정상회담 이후 원자로 지원설까지 떠돌고 있다. 우리의 대잠(ASW)망과 동맹 억제 체계에 빈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숨기면서 개발하는 현행 체제는 단점이 많다고 한다. 해외 핵심 부품·소재는 보통 ‘최종 사용자 보증(EUC)’ 없이는 수출 허가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부품을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산소발생기 등 여러 부품을 사와야 하는데 핵잠수함을 개발하기 위해 구매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어야 사업에 속도가 붙습니다” 비닉 상태에선 발주처·최종용도·재수출 금지 조건을 대외 문서로 제출하기 어렵고, 그때부터 글로벌 공급망은 굳게 닫힌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물론 외교의 문도 두드려야 한다. 현행 한미원자력협정(일명 123협정) 아래 한국은 20% 미만 저농축우라늄(LEU)에 제한적으로 접근할 뿐, 고농축·재처리는 금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31일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가급적 일본과 유사한 권한을 목표로 농축·재처리 측면의 여지 확대를 협의 중”이라고 했다. 다만 미국의 핵 비확산 원칙은 견고하다. 그래서 더더욱 공개적이고 투명한 해법이 필요하다.

여론은 이미 앞섰다. 2021년 조사에서 국민 75.2%가 핵잠수함 도입 필요성에 동의했다. ‘정치적 결단’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첫 단계는 숨기지 말고, 당당히 공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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