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못 하면 수천억 배상 리스크
SK온·LS MnM에 쏠린 눈
공모 EB·유증 선회 움직임도

지난해 12월19일 국회 본청에서 민주당 주최로 이사 충실 확대 의무 관련 상법 개정안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지난해 12월19일 국회 본청에서 민주당 주최로 이사 충실 확대 의무 관련 상법 개정안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상법 개정안 추진에 SK·LS그룹이 바빠졌다. 상장 일정이 촘촘히 잡힌 자회사들이 여럿인 데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정 차질이 단순한 연기를 넘어 수천억원대 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SK온과 SK에코플랜트, LS MnM, LS이브이코리아 등은 투자자와 사전 약속된 상장 기한이 존재하거나 과거 상장 철회 이력이 있어 부담이 크다.

◇ SK·LS, 상장 기한 다가오는데 제도 리스크 ‘겹겹’

17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취임 후 주재한 첫 원내대책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은 공정한 시장질서와 ‘코스피 5000시대’를 여는 출발점인 만큼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민생개혁 입법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기조하에 상법 개정안을 가장 먼저 처리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개정안에는 전자투표 의무화,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3% 의결권 제한 등 경영권 구조를 흔들 수 있는 내용이 대거 담겼다. 특히 물적 분할 후 상장이나 자회사 중복상장에 대한 견제장치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 전략을 짜온 기업들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주사가 비상장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주요 수단은 상장이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들과 일정 조건을 명시한 계약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법이 개정되면 상장 추진 절차에 시간적·제도적 제약이 가해져 투자금 회수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대기업들이 늘면서 일부는 IPO 대신 공모 교환사채(EB) 발행이나 유상증자 등 대체 자금조달 방식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SK온 서산공장./사진=SK온
SK온 서산공장./사진=SK온

◇ SK온·에코플랜트·엔무브, 상장 시한폭탄 ‘째깍’

SK·LS그룹처럼 상장이 가시권에 들어온 자회사를 둔 경우엔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상장 일정이 미뤄지면 풋옵션,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일정 배당률 보장 등 계약 이행 조건이 작동하면서 법적 분쟁이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SK그룹의 친환경·건설기업 SK에코플랜트는 2026년 7월까지 IPO에 실패하면 전환우선주 투자자에게 약속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 첫해 5%에서 시작해 해마다 3%포인트씩 가산되는 구조다. 현재 장외시장에서 추정되는 기업가치로는 약 4조~5조원이 거론된다.

SK온은 2022년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2조8000억원을 조달하며 2026년 상장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배터리 업황 악화로 실적 회복이 늦어지며 목표 시점을 ‘2028년 전’으로 조정했다. “회사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을 때가 IPO 적기”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당시 투자계약에는 일정 시점까지 상장을 하지 못하면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드래그얼롱 조항이 포함됐다. SK이노베이션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재무적 투자자는 대주주 지분까지 묶어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구조다. 

SK엔무브의 경우 조건이 더 까다롭다. IMM크레딧솔루션과 맺은 계약에 따라 2026년까지 IPO가 무산되면 약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상환해야 한다. 실제로 올 상반기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 우려를 들어 예비심사 단계에서 제동을 걸었고, 이후 상장 작업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LS엠앤엠(LS MnM) 울산 공장 전경. / 사진=LS
LS엠앤엠(LS MnM) 울산 공장 전경. / 사진=LS

◇ LS이브이·MnM, 상장 뒤로 밀릴 수도

LS그룹도 복잡한 수순을 밟고 있다. 2022년 JKL파트너스의 특수목적회사(SPC)인 아르테미스 유한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LS MnM은 2027년 8월까지 IPO를 완료해야 한다는 조건을 안고 있다. JKL은 E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LS MnM 지분 24.9%를 확보했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IPO는 구조상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LS이브이코리아는 LS전선이 케이스톤파트너스의 특수목적회사(SPC)인 ‘케이브이쓰리퍼스트인베스트먼트 유한회사’를 통해 투자받은 회사다. SPC는 현재 LS이브이코리아 지분 16%를 보유하고 있다. 양측은 IPO 실패 시 케이스톤 측이 지분 전량을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전기차 충전 플랫폼을 추진 중인 LS이링크 역시 지난해 예심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북미 충전 인프라 수요 확대와 맞물려 향후 재도전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상법 개정으로 물적분할에 대한 주주 거부감이 커진다면 일정은 다시 미뤄질 수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손해’ 개념 적용 어디까지

상법 개정에 속도가 붙으면서 증권사와 로펌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상법 개정이 실제 기업에 적용될 경우 어떤 기준으로 개별 주주의 손해를 판단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관련 판례가 없고, 손해라는 개념을 단기 주가 하락으로만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법리적 논란도 남아 있다.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말 발표한 논문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형법상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처리자의 범위, 재산상 손해의 인정범위 등을 유추·확장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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