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호 네메시스 대표
생체 신호처리 전용 칩으로 의료기기 시장 공략
내년 웨어러블용 칩도 출시···미·중 기업과 협업 논의

왕성호 네메시스 대표 / 사진=고명훈 기자
왕성호 네메시스 대표 / 사진=고명훈 기자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바이오 신호처리 분야에서 세계 선두 기업이 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로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오 신호처리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파다 보면 적어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1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체 신호처리 부문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 네메시스가 올해 손익분기점 달성을 목표로 한다. 2년 뒤 기술 특례 상장도 노린다.

왕성호 네메시스 대표는 21일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것이 가장 단기적인 목표이고, 우선 제품은 나왔으니까 중기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메시스는 지난 2017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를 개발해 출시했다. 혈당, 심전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생체 신호처리 전용 칩으로의료 진단기기 시장을 공략한다. 내년 스마트워치, 스마트반지 등 웨어러블 시장 공략도 본격화한다. 현재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온디바이스 AI를 개념으로 한 신규 시스템온칩(SoC)도 선보일 계획이다. 바이오 신호처리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지위를 확보하겠단 목표를 내세웠다.

왕 대표는 “IPO의 목적은 더 큰 도전을 위한 것이다. 칩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제품 라인업을 확보하기 위해선 많은 돈과 사람이 필요하다”며 “IPO를 통한 공모 자금으로 더 큰 도전을 하겠다. 그때는 매출도 지금보다 10배 더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왕 대표와의 일문일답.

Q. 네메시스에 앞서 또 다른 창업 이력이 있다

옛 LG반도체 출신으로, 메모리 공정 설계를 담당했었으며, 회사가 하이닉스 반도체로 합병된 이후에도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03년 퇴사해 바로 창업을 했었다. 첫 번째로 시작한 회사가 레이디오펄스라는 회사로, 무선통신 반도체를 주력으로 했다. 한동안 매출이 빠르게 올라가다가 중간에 미국 회사에 큰 건을 뺏기면서 고생도 했고, 그러다가 2015년에 미국 회사에 매각을 결정했다.

무선통신 트렌드가 와이파이까지 원칩이 돼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대응할 경쟁력을 갖추려면 직원도 수십 명이 더 필요하고, 자본도 수백억원이 더 필요했다. 당시 우리가 번 돈으론 더 이상 투자가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또 회사 매출 97% 가량이 내수였는데,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려 해도 해외 마케팅 투자도 어려웠다. 결국 더 큰 회사에서 운영돼야겠단 생각으로 주주들과 얘기해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

Q. 무선통신 반도체를 하다가, 생체 신호처리 분야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있었나

무선통신 부문을 팔 수밖에 없었던 첫째 이유가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수백억원 규모를 펀드레이징(모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분야는 대기업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우리는 같은 기술을 갖고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분야를 모색했다.

아날로그 회로 설계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시스템온칩(SoC)를 구현했다. 미국에 있는 벤처 캐피털(VC)이 조언을 해줬는데, 바이오 신호처리 분야가 앞으로 상당히 유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제민규 카이스트 교수도 글로벌 생체 신호처리 분야 전문가로, 많은 논문을 내셨다.  학계 논문을 기반으로 한 기술들을 우리가 회사에서 양산화하는 개념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생체 신호처리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다.

Q. 네메시스의 사업 기반이 되는 주요 특허 기술들은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다

생체 신호처리를 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냥 A/D컨버터(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를 좋은 제품으로 쓰면 되는데 생체 신호라고 뭐가 다르겠냐는 것이다. 기본적인 개념을 말하자면 무선통신은 LTE 같은 경우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지만, 신호를 받기 쉽도록 패킷 형태로 예쁘게 데이터를 송신해준다. 말하자면 ‘약속대련’인 것이다. 

조금 복잡하더라도 신호를 받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생체 신호는 하늘이 준 신호다. 몸에서 나오는 신호는 굉장히 어수선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이 심하다. 심지어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은데 움직이면 신호가 깨져버리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바이오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만이 바이오 신호를 다룰 수 있단 특징이 있다. 좀 희귀한 분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바이오 전문가가 2명이 있고, 기술 고문 그룹에도 바이오 전문가를 두고 있다. 이분들 모두 칩 설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Q. 생체 신호처리 반도체 분야에서 국내외 경쟁사는

국내에 우리 말고도 생체 신호 처리 칩을 하는 곳이 두 군데 있지만 완제품 사업도 병행하고 있어 모델은 다르다. 우리는 ‘실리콘 파트너’라고 이름을 붙인다. 헬스케어 기기 회사에 칩을 공급하는 바이오 신호처리 반도체 전문 회사다. 국내에 이런 곳은 우리밖에 없다. 해외 실리콘 파트너로서 생체 신호처리 칩을 판매하는 회사가 5곳이 있다. 미국 대기업 4곳과 유럽 대기업 1곳 등이다. 최근 중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우리와 같은 스타트업이 하나씩 생기긴 했지만, 후발주자다.

이들 경쟁사 대비 우리 강점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우선 경쟁사들은 주로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생체 신호처리에 특화돼 있다기보단 하나의 부서 단위로 일을 한다. 우리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있어서 아날로그 회로 기술에서 장점을 지닌다. 두 번째로, 대기업들은 맞춤형 칩을 제작해주지 않는다. 현재 반도체 트렌드는 ‘나만의 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표준 제품의 대명사인 D램도 엔비디아향으로 제작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맞춤형 메모리로 제작되고 있다. 구글이나 테슬라, 애플도 칩을 만든다. 그러나 제약회사, 헬스케어 기기 회사들은 칩을 개발하기 어렵다. 우리 같은 실리콘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 경쟁사들은 이들 고객사에 맞춘다고 최적화한 칩과 기술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센서의 신호를 맞춰주고, 최적화한 칩을 제공할 수 있어서 고객사들이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환영한다.

Q. 신형 칩 출시 소식이 있다

이전엔 고객사로부터 의뢰를 받거나 기술 이전에 대한 요청으로 칩을 제작해 제공했는데 이번에 회사 설립 후 자체적으로 만든 첫 번째 칩을 출시했다. 생체 신호처리 전용 칩 ‘NMS4110’이다. 바이오 전기화학 방식의 센서가 앞으로 상당히 유망하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한 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CGM이란 연속혈당측정패치에 주로 쓰이는 칩으로, 전기화학 방식의 바이러스 진단 키트에도 활용된다.

블루투스 기능을 넣은 NMS4160 칩도 개발했다. 헬스케어 기기 대부분이 어차피 블루투스를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칩과 블루투스 칩 두 개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인쇄회로기판(PCB) 보드의 영역이 넓어지니까 디바이스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 NMS4160 칩은 생체 신호처리 반도체에 블루투스 기능을 넣은 리드아웃 IC(ROIC)로, 윷놀이에서 말을 얹듯이 칩을 중첩해서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면 디바이스 크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본업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 매출은 칩 설계를 의뢰받아 개발하는 것에서 나왔는데, 앞으론 제품 판매에 대한 신규 매출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올해부터 칩 매출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Q. 최근 웨어러블 기기의 헬스케어 기능이 고도화되고 있다. 네메시스도 이쪽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나

스마트워치, 스마트밴드, 스마트반지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용 칩도 열심히 개발 중이며,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객사들의 요청이 있었고, 이를 반영해서 자체 제품으로 개발 중인 제품이다. 주요 고객사들은 우선 칩의 물리적 크기가 작아야 한다, 저전력이어야 한다, 하나의 칩이 여러 가지 센서를 다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신호가 전압으로 나오든, 전류로 나오든 상관없이 이 세가지가 주된 요청이고, 우리는 여기서 차별화하고자 한다. 현재 여러 스마트워치 제조사들과 활발히 교류 중이며, 특히 미국, 중국 회사와 논의하고 있다.

Q. 또 준비하고 있는 신규 사업이 있다면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쪽으로도 계속 개발 중이다. 서버에서 하는 AI가 아니라 끝단인 엔드 디바이스에서 머신러닝을 이용해 간단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능으로, AI 처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용 AI 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타이밍 머신러닝을 이용해서 아날로그 회로의 성능을 높이는 쪽으로 개발하고 있다. 기존엔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올리는 방식이었는데, 그러면 트래픽도 많아지고, 아무리 슈퍼 서버라고 해도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엣지단에서의 간단한 의사결정 하나만으로도 서버에 가는 부담을 굉장히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온디바이스 AI의 개념인데, 우리는 이런 개념으로 접근 중이다. 2027년 출시를 목표로 한다.

다만, 환자의 데이터를 우리가 직접 건드리진 않는다. 환자의 데이터는 디바이스 회사, 의료서비스 회사에서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다. 우리는 고객과 다투지 않는단 방침 아래 환자 데이터를 건드리지 않고 간단한 의사결정만 해서 데이터를 보내드리는 것이다.

Q. 최근 팹리스 산업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팹리스 산업 육성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팹리스 전용 투자 펀드가 필요하다. 반도체 펀드는 있지만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고정 거래선으로 두고 있는 파운드리와 소부장으로 많이 간다. 팹리스는 이들 회사보다 리스크가 크다 보니 반도체 펀드 자체가 소부장 쪽으로 많이 가고 있다. 팹리스 전용 펀드가 있다면 적어도 설계자산(IP)을 확보해서 도전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AI 반도체 회사들이 투자를 잘 받고는 있지만, 우리와 같은 바이오도 그렇고, 전력반도체, 자동차 등 전망 좋은 분야가 상당히 많다. 미국처럼 되려면 정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팹리스들이 적어도 자기 제품을 양산해서 시장에서 한 번 승부를 볼 정도까지는 밀어줘야 한다.

두 번째로 팹리스 전용 보증 프로그램도 조성됐으면 좋겠다. 기술보증기금 등에서 전년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기술 보증 한도를 정해주는데 매출액이 적은 팹리스 기업들은 상당한 개발비가 필요함에도 최소한의 보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원들에 대한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연구원들의 급여 자체가 높지 않아서 적어도 스톡옵션에 있어서 비과세로 해준다든지, 근로소득세를 어느 정도 감면해준다든지 등 연구개발자들을 위한 인센티브 혜택이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간 대기업들이 수십년 동안 수백배 성장하며 우리나라 경제를 살려왔다면, 약 10년 전부턴 10~20배 더 커지는 게 어려워졌다. 앞으론 대한민국 경제가 2배로 성장하려면 결국 스타트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을 지탱하는 것도 전통적인 철강 회사나 철도 회사가 아니라, 애플, 구글,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 등 50년이 안 된 스타트업들이다. 미국이 이렇게 부강하게 된 거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나도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스타트업이 나와야 하며, 엔비디아와 같은 팹리스에서 유니콘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공격적인 투자가 돼야 할 것이고, 민간 투자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큰 계기가 바로 M&A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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