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사적 경계의 모호성 심화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덕질 대상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날의 조명, 그날의 온도와 습도, 최애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무수히 많은 콘텐츠 속에서 나와 마주쳤을 때, 그 순간의 우연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을 거쳐 나에게로 도달했는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덕질을 하는 덕후들에게는 필연적인 모먼트다. 그리고 그 이후 팬들의 세계는 360도 회전한다. 팬은 최애가 등장하는 모든 것을 수집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살펴보거나, 관련된 콘텐츠를 꼼꼼하게 독해하거나 상상한다.
문제는 덕후들에게 이 ‘상상한다’란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인과 가족들의 마음도 다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미디어로 매개되는 순간이 훨씬 더 많은(거의 99%를 차지하는) 최애의 본질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건 신화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디지털 콘텐츠가 빠르게, 순식간에 매개의 순간을 비가시화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리얼리티 그 자체를 최애의 콘텐츠에서 접하게 된다고 믿는다.
심지어 현재의 디지털 환경은 사적인 최애와 공적인 최애가 서로 뒤섞이는 지점을 더 많이 노출하기에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최애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라는 감각은 사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콘텐츠 밖 최애의 모습을 실질적으로 알고 싶은 하는 팬들도, 그렇지 않은 팬들도 존재한다. 팬들은 대체적으로 최애의 사적인 부분이 존재하고 그것을 모두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데 공감하면서도, 공적인 페르소나와 사적인 페르소나를 모두 마주했을 때(그리고 이것이 철저하게 분리된 최애가 존재할 경우) 당황하거나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은 소셜 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경우들이 꽤 있기 때문에, 공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확연하게 구별되거나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다시 말해 멀티 페르소나가 일상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점차 흐려지는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애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겪는다. 사적인 영역이니 침범하지 말아달라고 하기에, 이미 최애는 너무 많은 사적인 영역을 공개했고, 이를 통해 콘텐츠를 제작한 케이스 또한 점차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 쇼는 연애라고 하는 ‘철저히 사적으로 정의돼왔던 관계’가 리얼리티 쇼라고 하는 공적인 무대로 들어와 콘텐츠로 제작된 사례다. 여기서 탄생한 커플들은 자신의 사적인 관계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적인 관계인가? 아니면 사적인 관계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 것인가?
많은 연예인들이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사적, 공적 영역의 경계는 점차 많은 부분 사라지고 모든 것이 혼합돼 ‘콘텐츠로 유통되는 채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내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덕질을 비롯한 우리의 미디어 실천은 이전과는 달리 복잡한 영역의 마주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