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대물림, K콘텐츠 지속가능성 제고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평생을 팬질을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내가 점차 팬덤 내부에서 고령화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덕질을 시작한 것은 10대쯤으로, 팬덤은 종종 아동기나 청소년기, 청년기에 발생하는 경험으로 프레임화되기 때문에 고령화된 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낙인과 배제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나 또한 다양한 장르의 팬덤을 경험하면서, 일부 연령과 성별 정체성을 고착화하는 경향을 목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뮤지컬 장르를 소구하는 이용자들은 20대 이상의 여성 이용자층일 것이란 것과 K-Pop 아이돌의 헤비유저들은 10대들, 트로트 장르의 팬덤은 중-노년층일 것이란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적 고정관념, 혹은 팬덤에 있어서의 ‘이상적이고 고착화된 모델’을 상정하는 것은 잠재적 팬들의 진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수년에 걸쳐 사회적 역할이 변화하는 팬의 생애 과정에서 팬 수행에 대한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산업적, 콘텐츠 생산자적 입장에서도 콘텐츠 주기 연장을 위해 여러 장르의 다양한 세대적 팬덤의 공존가능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팬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장르와 함께 성장하고 나이 들어갈 수 있다. 고령팬의 지속적인 존재와 활성화 가능성은 실제로 콘텐츠 IP 프랜차이즈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K-콘텐츠의 지속가능성은 팬질의 세대적 대물림 사이에서도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어머니가 K-콘텐츠의 지속적인 팬이었을 경우 자녀들 또한 K-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을 갖는다.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멤버가 속해있는 또 다른 유닛의 콘서트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 팬이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콘서트에 함께 참석하며 응원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가족 중 한명의 콘텐츠 팬덤 활동은 그 아래 세대의 팬덤 사회화를 조정할 가능성을 갖는다.
이런 세대간, 혹은 세대를 대물림해 팬덤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드라마 시리즈의 리부트, 영화 프랜차이즈와 같은 문화 산업에서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콘텐츠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져올 수 있단 점에서 중요하다. 팬덤에 대한 애정은 중요하고 인생에 활력을 주지만, 팬덤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나이든 팬들이 팬덤의 대상에 대한 포기로 이어지게 만드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팬 활동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라기보다 주기적인 활동에 가깝게 만든다. 팬이 된다는 것은 팬덤에 참여하는 수십년에 걸쳐 다른 형태를 취할 수도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 수도 있다.
H.O.T.가 등장하고 난 뒤 27년이 지났다. 나 또한 그만큼 나이를 먹으며 생애주기와 사회화 과정을 겪고 있다. 팬덤과 팬질의 행동반경과 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를 통해 내가 얻는 즐거움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구조가 나의 덕질에 있어서의 장벽이 되지 않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여전히 누군가의, 특정 장르의 팬이며, 오프라인 공연장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공연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세대와 나이, 그리고 성별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것을 문제 삼는 사회를 다시 한번 고찰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