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조 반발·감사의견 거절로 수난 이어져…빅배스로 부실 털어내며 올해 심기일전 다짐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은 지난해 악재만을 겪었다. 취임 전부터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하 산은)의 ‘낙하산 인사’란 의혹을 받으며 사내 노조의 격렬한 저항을 맞았다. 노조 측이 박창민 사장 취임 이후에도 ‘투쟁’을 예고하며 불안한 최고경영자의 지위를 이어갔다.
11월에는 대우건설이 지정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에게 3분기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이는 연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해야 하는 박창민 사장에게 ‘주가하락’이란 악재를 안겼다. 대우건설의 매각기일도 올해로 연기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박창민 사장에게 분위기 반등요인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박창민 사장의 입지가 점차 공고해지고 있다. 노조 측의 반발도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또한 대우건설이 지난해 손실에 대한 ‘빅배스(대규모 손실처리)’를 계기로 올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박창민 사장에게 ‘비온 뒤 해뜰 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박창민 사장의 올해 가장 큰 과제는 대우건설을 적정가에 매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가치를 높여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매각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박창민 사장 불안한 출발…노조의 격렬한 반발
박창민 사장은 취임 전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대우건설 주채권 은행인 산은 측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사장은 5명의 사장추천위원회(산업은행 인사 2명‧대우건설 사외이사 3명, 이하 사추위)에서 1차적으로 후보로 선출돼야 한다. 전임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임기만료를 지난해 5월부터 사추위는 후보군을 물색했다. 이후 6월 10일까지 사추위는 박영식 전 사장, 이훈복 대우건설 전략기획본부장의 최종면접을 마쳤다. 최종 후보자 선정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6월말 사추위는 돌연 최종 후보자 선정절차를 외부인사를 포함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내부 임원에서 대우건설 사장이 인선되는 것과 반대되는 행보였다. 이에 업계에서 ‘산은 측의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후 사추위는 7월달에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과 조응수 전 대우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사추위는 8월 5일에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신임사장 후보로 단독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매각을 앞둔 산은 측의 무리수라는 지적이 업계에서 제기됐다. 산은은 공모펀드인 ‘KDB 밸류 제 6호’를 통해 대우건설의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다. 산은은 펀드 만료일에 맞춰 내년 10워에 해당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주가가 지분매입 시점인 2010년 대비 3분의 1 이상 떨어진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낮은 주가는 대우건설 매각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주가부양을 위해 산은 측 인사인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구원투수’ 성격으로 투입됐다는 예측이 나왔다.
사추위의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 단독후보 추천에 대해 대우건설 노조 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창민 전 사장에 대해 노조 측은 사장 공모 시 자격요건인 해외 수주능력의 객관적 검증 부재, 정치권 고위 인사의 압력 등을 이유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실제 박창민 사장은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역임하며 ‘주택사업’에 능숙하지만 해외건설 수주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많았다. 노조 측은 박창민 사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사내에서 선임 반대 결의대회를 개최하며 강경한 대응을 펼쳤다.
이같은 내외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8월 23일 임시주주총회, 이사회를 거쳐 대우 건설 신임사장으로 취임했다. 대우건설의 첫 외부인사 출신 사장이다.
◇ 3분기 감사의견 거절…겹악재 이어져
어렵사리 최고경영자에 올랐지만 박창민 사장은 또다른 시련을 맞는다. 대우건설 3분기 재무제표에 대해 지난해 11월 14일 안진회계법인이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안진회계법인 측은 회계 주요 계정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적합한 증거”를 제시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안진회계법인 측은 공사수익, 미청구(초과청구) 공사, 확정계약자산(부채) 등을 포함해 대우건설의 해외 부문 불확실성과 부족한 정보를 이유로 ‘의견거절을 했다’고 밝혔다.
감사의견 거절은 대우건설 주가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대우조선해양을 필두로 한 수주산업 회계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재차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주가는 3일새 5.67% 감소했다. 시가총액은 5000억원 가량 증발했다. 아울러 3개 신용평가사(NICE 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는 ‘대우건설 등급하향을 검토한다’고 일제히 발표했다.
앞서 기자와 만난 건설사 관계자는 “감사의견 거절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공여는 물론 (대우건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상당히 안 좋아졌다”며 “(박창민 사장의) 대우건설 운영에 치명적인 악재”라고 말했다.
이는 연내 대우건설 매각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은 측은 12월 대우건설 매각공고를 ‘2016년 사업보고서가 나오는 2017년 3월 이후 낸다’고 밝혔다. 회계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가부양을 하기 위한 의도라는 업계의 분석이 나왔다.
◇ 입지 강화, 빅배스 등으로 올해 기분 좋은 출발
박창민 사장은 올해 들어 좋은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상전벽해 (桑田碧海)다.
우선 박창민 사장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조직개편, 산은 측 인사임명(CFO 자리에 송문선 전 산업은행 부행장 인선 등) 등으로 박창민 사장의 권한이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출근투쟁, 청문회 개최 요구서한 발송을 예고했던 노조 측도 이전과 달리 박창민 사장에게 강력한 반발을 지양하는 상황이다.
대우건설 내부 관계자는 “노조 측이 박창민 사장 인선 시 불합리한 인사, 구조조정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박창민 사장이 노조 측과 꾸준히 접촉하는 등 구성원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이에 노조 측도 이전과 달리 박창민 사장에게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빅배스를 통해 실적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대규모 부실을 지난해 반영한 만큼 추가손실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출 10조9857억원, 영업손실 5030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9일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1.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4분기 해외사업장의 미청구공사 대금 등 손실 가능성이 높은 금액이 대거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빅배스에 시장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9일 1주당 5380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당일 5840원에 마감했다. 13일에는 1주당 6010원에 마감했다. 4일 만에 2.9%가 올랐다. 아울러 의견감사 거절 이후 처음으로 재차 1주당 6000원대를 회복했다. 미래 어닝 서프라이즈(시장의 예상치를 넘어서는 깜짝 실적)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아울러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대해 안진회계법인에게 ‘적정의견’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안진회계법인이 문제삼은 미청구공사 등을 대폭 손실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 매각작업 아직까지 안갯속…추가 주가부양, 실적개선 필요해
올해 출발이 좋았지만 박창민 사장은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대우건설 주가부양이다.
산은 측은 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적정 주가를 1만3000원으로 보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우건설 주가가 매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다”고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빅배스 이후 주가상승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산은 측이 제시한 적정주가에 다다르기 위해선 박창민 사장의 추가 실적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주가개선과 별개로 매각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건설경기 불황으로 인한 대우건설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이다. 국내 진출에 관심이 있는 해외 건설업체도 이 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자와 통화한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내 부동산 시장 침체 가능성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외 건설업체에게 이는 대우건설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며 “대우건설 빅배스에도 대우건설 가치가 확연히 올라갔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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