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품질문제 제네시스·아이오닉으로 번질 시 치명타…“정의선 승계 위해서라도 위기관리 직접 나서야”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자동차산업은 격변기를 맞았다.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고급세단이라는 차세대 먹거리를 둔 자동차사 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는 자동차사 최고경영자(CEO) 행보에 주목한다. 현대·기아차 정의선, 한국GM 제임스 김, 르노삼성 박동훈, 쌍용차 최종식. 이들 국내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자의 킹핀(핵심 목표)은 무엇인가. 올해 마지막 분기에 접어든 10월, 그들의 고민과 숙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현대·기아자동차의 모토는 ‘품질 제일주의’다. 2000년 그룹 출범 초기, 시장조사기관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최하위권(현대차 34위·기아차 37위)을 기록한 이래 정몽구 회장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차를 생산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품질 개선을 강조해 왔다.
정 회장의 뚝심은 16년 뒤 가시화되는 듯 했다. 올해 JD파워 초기품질지수(IQS) 평가에서 전체 33개 브랜드 중 기아차는 1위, 현대차는 3위에 올랐다. 다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현대차 현직직원으로부터 “현대·기아차가 리콜 대상 차량을 은폐했다”는 내부고발이 터져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현대차가 에어백 결함을 은폐”했다며 이원희 현대차 대표를 고발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강조했던 '품질 안정화'를 넘어 '품질 고급화'로 미래를 열겠다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친환경차 아이오닉은 협소한 친환경차 시장 탓에 대중화까지 갈 길이 멀다. 고급차 제네시스는 해외시장 검증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품질문제가 정의선 부회장이 주도하는 미래차 개발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정몽구의 ‘품질경영’ 내부고발에 ‘와르르’
현대차에겐 악몽 같은 10월이다. 지난 달 23일 현대차 현직직원이 ‘현대·기아차 리콜 은폐’ 의혹을 제기한 이래 연일 품질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 간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한 내부고발자 김진수 부장(54·가명)은 “품질경영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던 회사는 안전 불감증에 걸려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부장은 지난달 20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관련기사 : [인터뷰] “리콜은폐 고발, 현대차 위한 결정”)에서 “현대차에서 파워트레인 리콜 업무를 담당했다. 리콜성 안전결함을 임의방식대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었다”며 “안전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결함은 정부와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는 자동차관리법을 현대차는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대차가 내부고발자 김씨에 대한 법적대응 대신 협상에 나선 게 업계 의심을 불렀다. 김씨에 따르면 현대차 측은 김씨에게 “리콜약속 등 원하는 사항 등을 적극 검토할테니 (내부고발을 중단하고) 대화하자”는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현대차 임원은 “내부고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벌써 법적 대응에 나섰을 것”이라며 “그런데 협상을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찔리는 게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품질전략본부는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오너에게 리콜 관련한 사항 일체를 보고하게 돼있는데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봐주기’ 의혹을 받던 국토부도 행동에 나섰다. 국토부는 지난 4일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 현대차 세타Ⅱ 엔진 제작결함 조사를 지시했다고 10일 밝혔다. 국토부는 결함 의심 차량 제작 전후 설계 변경이 있었다는 의혹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여기에 지난 5일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이원희 현대차 대표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강 장관은 이 대표가 지난해 6월 2∼3일 생산한 싼타페 2360대에서 ‘조수석 에어백 미작동 가능성’ 결함을 발견하고도 적법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실을 은폐했다고 밝혔다.
◇ 아이오닉·제네시스로 품질논란 번질 시 치명타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자만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며 '품질 고급화'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고급화 전 단계인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번 내부고발로 드러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무엇보다 품질 논란이 일부 차종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현대차 한해 실적을 좌우하던 싼타페와 아반떼 같은 주력모델이 모두 품질 결함 의혹에 휩싸였다. 두 차종 모두 구형모델이지만 신형 모델 구입을 구매하던 고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혼 후 이번 달 싼타페 구입을 고려하던 송유미(28)씨는 내부고발 기사를 접한 뒤 선택지를 르노삼성 QM6로 바꿨다. 신형 모델이 논란을 비껴갔지만 현대차 안전성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송씨는 “가격 대비 성능으로 봤을 때 국산차 중에서 현대차가 으뜸이지 않나. 하지만 나중에 아이와 함께 탈 차인데 안전문제가 거듭 불거지니 불안했다”고 말했다.
품질논란이 친환경차와 고급차 부문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친환경차 브랜드인 아이오닉과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지난달 들어 판매량이 크게 꺾인 상태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제네시스 EQ900는 지난달 대비 각각 42.5%, 10.7% 판매량이 감소했다. 두 차종 모두 고급 기술이 적용된 터라 기업의 품질 논란이 판매량과 직결된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품질문제가 정의선 부회장 경영승계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부회장이 제네시스와 아이오닉으로 차기 최고경영자(CEO)의 시작을 알린 만큼, 이들 차종 성패가 정의선 체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의선 브랜드’로 대표되는 이들 차종이 판매량 추락에 직면하게 된다면 경영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차의 가장 큰 문제는 정몽구 회장이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의선 부회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승계를 공식화 할 것이라면 구(舊) 수장이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는 불안감만 커진다”며 “주식회사에서 부자간 승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위기관리나 실적개선 등을 통한 경영능력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