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결함사고, 관련 부처만 국토부·환경부 등 수곳…"美 NHTSA 같은 자동차 전문 감시기관 만들어야"

운전자들에게 대한민국은 지뢰밭이다. 리콜(결함보상)에 소극적인 완성차사, 이를 방관하는 정부기관, 친(親)기업 법률 사이에서 운전자 안전은 방치돼 있다. 현직 자동차사 업체 직원이 리콜은폐 정황 자료를 들고 내부고발까지 나섰지만 자동차사는 요지부동이다. 안전 문제를 등한시하는 자동차사를 엄히 다스릴 법과 제도, 감독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본 기획에서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연이어 불거진 자동차 결함의심 사고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책 및 전문가 의견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비용이 비싸고 오너에 보고하기 두렵다는 이유로 자동차 결함을 은폐했다.”

23일 현직 현대차 김아무개 부장 한 마디가 대한민국 운전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김 부장은 현대차가 엔진 및 에어백 결함을 발견했지만 법적 의무인 리콜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부장은 현대차 엔진 전문 엔지니어로 리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현대차 결함을 증명할 자료를 이미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부장은 이 자료를 한국 정부나 수사기관이 아닌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보하기로 했다. 이유는 친소비자적인 미국 현지법과 NHTSA의 강력한 권한에 있다.

NHTSA는 차량의 교통안전기술표준을 제정·감독하고 자동차, 오토바이 등 제품의 안전도를 시험 평가하는 미국 정부기관이다. 기관 내에 연구소를 따로 두고 검사 시스템과 정책을 개발한다. 연구진들은 미국 유수 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제원들이다.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들도 다수 포진하고 있다.

NHTSA는 연구진들이 개발한 검증시스템을 통해 미국 내 전차종을 검사하고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달하면 가차 없이 리콜을 명령한다. 실험 결과는 미국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NHTSA가 1년에 처리하는 자동차 안전 관련 민원만 약 3만건에 이른다.

내로라하는 자동차 관련 업체마다 NHTSA 서슬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2015년 5월에는 일본 다카타사 에어백 내부 금속 파편이 충돌 시 운전자에게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발견되자, 에어백 장착 차량 3400만대를 리콜하라 명령했다. 다카타가 리콜에 주저하자 NHTSA는 성명을 통해 “생명과 관계된 문제로 리콜에 속도를 더 내라”며 공개 압박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결함 의심 차량 리콜을 거부하거나 강제성이 없는 무상수리로 대처하는 경우가 늘면서, 전문가들 사이 ‘한국판 NHTSA’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에 자동차 생산부터 결함 및 시정감독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자동차청’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은 자동차와 관련된 정부 기관만 수 곳에 이른다. 자동차관리법을 근거로 자동차 형식승인 및 안전기준을 감독하는 기관은 국토교통부다. 자동차 배출가스나 소음 규제는 환경부 소관이다. 또 자동차 불만 사항은 소비자원이 처리하고 있다.

자동차 결함의 경우 자동차관리법 외에도 소비자 불만 및 환경영향 평가가 수반되다 보니,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맞물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자동차 컨트롤타워의 부재(不在)가 자동차 결함에 대한 정부의 비효율적 대처를 낳게 된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수요와 사고가 동시에 늘고 있는 만큼, 자동차만을 전문으로 감독·연구하는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폴크스바겐 스캔들 및 현대차 리콜은폐 의혹이 일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자동차청 설립을 검토할 적기라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 리콜결함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다. 같은 결함도 미국이 한국보다 엄하게 다스리다 보니, 한국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인식이 자동차사들에 널리 퍼져 있다. 이제 정부기관이 자동차 결함문제 해결에 강력한 의지를 보일 때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청과 같은 자동차 컨트롤타워가 생겨야 한다. 현재처럼 중구난방으로 자동차 결함문제를 여러 부처들이 나눠 처리해서는 자동차사들이 결함 해결보다는 은폐에 급급할 것”이라며 “철두철미한 조사와 강력한 힘을 가진 소비자 중심의 자동차 기관이 있어야 한다. 결함 사고가 폭로로 인해서만 밝혀져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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