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부품 탑재 시 화재위험 증가…“스마트카 안전제도 마련해야”
#. 2020년 어느 월요일, 직장인 김재일씨는 얼마 전 완성차브랜드가 출시한 자율주행차량 S를 타고 출근길에 오른다. 차량에 오르고 목적지인 “강남 신사동”이라고 말하자 차량이 알아서 주행한다. S는 통신망을 이용해 주요 뉴스와 일기예보 등을 음성으로 들려준다. 그동안 김씨는 오전 업무를 확인한다. 그런데 차량이 올림픽대로에 진입한 순간, 컴퓨터에 에러가 발생하듯 자율주행기능이 먹통이 된다. 앞차를 들이박고 멈춰 서자 센터페시아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김씨가 차량 밖을 탈출하자 보닛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예언하는 미래 교통사고 유형이다. 자동차에 여러 전자장비가 탑재되면서 자동차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가 된다. 사고 유형도 다양해진다. 컴퓨터에 오류가 발생하듯, 자동차 자율주행기능을 관장하는 운영체제(OS)가 정지해 추돌사고가 발생한다. 자동차에 전기회로가 광범위하게 설치되면서 합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도 높아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동차 업계와 정부가 스마트카의 위험요소는 알리지 않은 채, 첨단 기능 선전에만 몰입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전자통신(IT) 장비로 탈바꿈하는 만큼, 정부가 보험제도 정비를 비롯해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5월 19일부터 리콜 중인 320d 등 BMW 승용차 13종에 대해 수입·판매사인 BMW코리아가 '연료호스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리콜통지와 신문공고를 다시 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달리던 BMW 차량에서 불길이 치솟은 사건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해 11월이다. 그 후 한 달에 2~3회씩 유사한 BMW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화재 차량 대부분이 전소될 정도로 화재 규모가 컸다.
당시 BMW코리아 측은 “국과수와 독일 본사 화재감식팀이 화재 건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결과, 상당수 차량들이 완전히 전소되어 명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며 “전소 되지 않은 차량의 경우 외부수리업체에서의 불량 부품 사용과 차량 개조로 인해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화재와 연료호스 결함 간 인과관계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국토부는 BMW 주장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BMW코리아는 엔진룸에서 누유된 연료가 고이는 부분이 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지 않아 (결함으로) 불이 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면서 "엔진룸 내 다른 부분의 온도가 화재가 일어날 정도로 올라가고 그 쪽으로 연료가 옮겨가 불이 날 가능성이 이번에 밝혀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BMW 화재사고가 단순 누유사고를 넘어, 미래 자동차 사고의 한 유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즉, 차량에 첨단장비가 탑재하게 되면 엔진룸 온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누유 등이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첨단 장비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시키는 게 추세다. 그렇다보면 차량 내부에 회선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 회선들이 굉장히 얇다”며 “피복 벗겨짐 등으로 합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런 전자장치가 많이 탑재된 차가 노후화되면 차량 내부온도가 상승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위험요소를 자동차사가 애써 외면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량 안전문제도 대두된다. 자율주행차량 개발은 BMW, 벤츠, 볼보 등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뿐만 아니라 구글, 테슬라, 애플 같은 IT 회사들도 욕심을 내고 있다. 이 중 자율주행차량 대중화에 가장 앞선 기업으로 평가받는 기업이 테슬라인데, 지난 7월 테슬라 자율주행기능을 이용하던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테슬라 오토파일럿 시스템 오류였다. 전방에 흰색 트레일러를 테슬라 오토파일럿 시스템이 밝은 햇빛 탓에 인식하지 못해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잘못도 있었지만, 자율주행기술이 대중화에 근접했다고 자평하던 테슬라 신뢰도에 큰 금이 가는 사고였다.
국내에 테슬라에 버금가는 스마트카 기업은 없다. 다만 유수 기업들이 미래차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어둔 상태다. 특히 LG전자와 삼성전자, 현대차그룹이 첨단자동차 분야를 이끌 것으로 평가받는다.
LG는 2014년 6월과 11월에 각각 ‘OAA(Open Automotive Alliance·구글 중심의 스마트카 개발 연합)’와 ‘AT&T 드라이브 스튜디오(AT&T 중심의 4G 기반 스마트카 개발 연합)’에 가입했다. 삼성전자는 LG보다는 자동차산업 진출에 소극적이지만 최근 전장사업팀을 꾸렸다.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 EQ900 출시와 더불어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용 칩과 센서 개발에 대규모 연구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오는 2020년까지 고도자율주행을, 2030년 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기업들이 많은 개발비용을 투입한 만큼, IT장비와 자율주행기능을 탑재한 대중차가 도로를 달릴 날이 5년 내로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스마트카 개발 및 보급에만 몰두할 뿐, 안전기준 마련과 제도 정비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서 ‘제2 테슬라 사고’가 발생하기 전, 스마트카 제반 정책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는 “미국 등 스마트카 선진 국가에서는 벌써부터 자율주행차량 사고에 대비한 보험상품 등이 출시됐다. 스마트카 시대를 대비한 법과 제도 마련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양새”라며 “우리나라 자율주행차 부분은 사실상 행정 공백이다. 이미 자동차가 개발됐을 시점에 가서 법을 정비한다면, 소비자는 그 사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