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와 대통령실 접촉 시도 잇달아 불발···정부, 근무시간 단축과 행정처분 유예 강조 
전공의 “정부에 설득 당하러 나갈 생각 없다”···불신과 분노가 무관심과 좌절로 전환
“힘든 수련 생활 거쳐 전문의 따야 하나”···현실적 연봉도 중요, 정부 대책 주목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의정대화가 답보 상태인 가운데 파업 사태 핵심인 전공의들이 정부의 물밑접촉에 묵묵부답인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의 재검토를 주장했던 전공의들 움직임과 심리 상태가 주목된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안을 논의할 의정협의체 구성을 위해 전공의와 물밑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실도 전공의와 접촉을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통령실의 이같은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포함한 전공의들은 연락이 쉽지 않으며 접촉해도 대답이나 반응이 없는 상태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 A씨는 “지속적으로 전공의들과 접촉을 시도하는데 정부와 대화 자리에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대구 소재 한 대형병원의 전공의가 부재한 인턴 숙소 모습. / 사진=연합뉴스
대구 소재 한 대형병원의 전공의가 부재한 인턴 숙소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0일을 전후로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2000명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후 침묵을 지키는 상황에서 최소한 접촉에 응해야 요구사항이나 대화 가능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전공의들이 입장 표명은 물론 접촉 시도 자체가 어려워 정부측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는 토로도 제기된다. 

전날 복지부는 분만과 응급 등 필수의료 전공의에게 매달 100만원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고 전공의 연속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등 당근책도 제시한 바 있다.

전병왕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관(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주문한 전공의에 대한 ‘유연한 처분’과 관련, “당과 정부가 협의 중”이라며 “복지부가 (의사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바로 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여당과 협의 중인 사안이므로 오는 4월 10일 총선거 전에는 전공의 대상 행정처분이 단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같은 정부 노력에도 전공의들이 당장 대화의 장에 나올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지난달 사직서를 제출한 후 현장을 떠났을 때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있었지만 6주 가량이 경과된 현재 대부분 전공의들은 무관심하고 때로는 좌절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류옥 전 대표는 “당초 대화를 희망했던 사람들은 바로 전공의였다”며 “하지만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설득이기 때문에 설득당하러 나갈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전공의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총선을 앞둔 일부 정치권이 개입하는 등 상황 변화로 인해 정부가 대화 의지가 없는 데도 대외적 제스처를 강조한다는 시각을 가진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2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른바 MZ세대로 불리우는 전공의 심리 상태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내놓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전공의 B씨는 “연봉은 적고 업무량이 많은 수련 생활을 버티면서까지 전문의가 되고 싶은 생각이 현재로선 없다”며 “일주일에 52시간 근무하는 수련 환경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현장에 복귀할 전공의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B씨는 “40여일 휴식하고 나니 그동안 열정페이 식으로 무리하게 근무했다는 생각”이라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두렵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C씨는 “얼마 전 지상파 프로그램에 나온 전공의들은 비교적 솔직하게 본인 생각을 털어놨다”며 “정부가 개혁한다고 의대 정원을 늘리면 정작 전공의들은 수련 생활 후 전문의를 따도 현재 선배들만큼 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선배들은 적은 연봉과 많은 근무시간을 버텨 전문의가 되면 금전적 보상이 있었는데 현재 전공의들은 그같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 D씨는 “과거와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 자제들이 늘긴 했지만 파업이 6주 가량 진행되면서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물색하는 전공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일부 개인이나 의료계 단체 차원에서 전공의에게 물품을 제공하는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도 홈페이지에 구인과 구직 게시판을 열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연결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파업을 진행 중인 전공의들과 대화를 개시하려면 진정성과 함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으로 요약된다. 향후 전공의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이 정부 능력의 척도가 될 전망이다. 전공의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대화 시도에 답해야 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정치권 관계자 E씨는 “일부 과격 발언이 의료계에서 나왔지만 대표성 있는 내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정치 이슈가 된 의대 증원 문제 해결책이나 진전된 조치를 정부가 최소한 다음주 초반까지는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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