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보증보험 가입금 10여년간 1000배 늘어···“보증금 미반환 예방책임 임차인 전가 문제”
“임대인 가입 임대보증금보증, 대위변제 비율 낮아”···“가입시 집값 감정평가로 거품 방지”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전세사기 불안이 커지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이 급증했다. 세입자 보호수단으로 꼽히는 제도지만 보증금 부담 책임이 임차인에게 있다보니 대위변제 사례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한단 지적이 나온다. 임대보증금보증처럼 임대인에게 가입 의무를 부여하고, 가격 부풀리기를 통한 꼼수 가입을 막기 위해 감정평가 등 주택가격에 대한 객관적 평가방식을 마련해야 한단 조언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세입자들이 겪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대응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세입자를 보호할 예방책에 대한 논의가 소홀하단 비판이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당이 내놓는 전세사기 관련 공약에도 제도적 개선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달 선구제후구상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이 본회의에 직회부 된 이후 전세사기 관련해서 특별히 논의되는 부분은 없다”며 “그간 전세사기 관련 논의가 피해 세입자 보상쪽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맞다. 피해자 구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예방책 마련에 있어 세입자 보호수단으로 여겨지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제도를 손질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 불안감 확산에 최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같은 지적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실적 분석결과를 보면 지난해 가입금액은 전년 대비 16조원이 늘어난 71조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2013년 765억원의 932배에 달한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은 당초 임대인이 가입하는 건설사(사업자)용과 임차인이 가입하는 일반 개인용으로 출시됐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13~2014년엔 사업자용 가입실적 비중이 80%를 차지했으나 2015년 20% 이하로 떨어지더니 2017년 1%대, 2019년부턴 0%대로 하락했다. 2022년엔 가입실적이 전무하다 보니, 현재는 흔히 일반 개인용을 반환보증보험으로 부른다. 

경실련 측은 “전세제도에 불안감을 느낀 임차인이 반환보증보험에 적극 가입했고, 임차인의 가입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하자 사업자용은 가입 필요성이 없어져 버린 것으로 보인다”며 “보증금 미반환을 예방하는 책임이 임차인에게 전가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임대인에게 가입 의무가 있는 임대보증금보증 제도와 비교했을 때 보증금 부담 책임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면 대위변제 사례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대위변제는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채무자 대신 채무를 갚고 구상권을 취득해 채권자의 채권이 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경실련 자료상 최근 4년간 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 금액은 198조5000억원, 대위변제금액은 4조2000억원으로 가입실적 대비 대위변제비율은 2.1%인 반면,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실적 금액은 106조7000억원 대위변제금액은 7261억원으로 가입실적 대비 대위변제비율은 0.7%였다. 임대보증보험의 대위변제비율이 반환보증보험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반환보증보험과 임대보증금보증은 같은 기관 상품이며, 상품 가입시 심사 내용도 주택가격, 보증금액, 근저당 등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임대보증금보증의 대위변제 발생이 적은 이유는 임대인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임대보증금보험 가입 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임대인들이 걸러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지자체에 등록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5년 이내 임대사업 부도가 발생한 사실이 없어야 한다”며 “임대보증금보증에 가입하지 않으면 임대보증금의 10%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임대사업자 등록을 아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환보증보험은 가입요건만 갖추면 사실상 임대인 책임과 의무가 없기에 사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며 “물론 임대인이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다고 전세제도 문제를 완전히 차단할 순 없겠지만, 임대임이 의무 가입한다는 것만으로도 전세 피해는 상당히 줄어들고 임차인 보호 부분은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환보증보험 가입을 모든 임대인에게 의무화한다면 자격 없는 임대인이 임대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현행대로라면 가격 부풀리기를 통해 부적격 주택도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므로 보완조치가 필요하단 분석이다. 주택가격과 임대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방식을 마련해야 한단 것이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분석 결과 발표 행사가 진행됐다. / 사진=최성근 기자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분석 결과 발표 행사가 진행됐다. / 사진=최성근 기자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검증절차 없이 거래가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어 전세사기꾼들이 만들어내는 전세가격이 적정 가격인 것처럼 통용되는 실정이다. 감정평가는 임대인이 직접 의뢰하지 못하도록 하고, 공시가격보다 전세금이 더 높은 경우 감정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단 진단이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은 임차인이 아니라 임대인이다. 임대인이 채무자인데 임차인이 자기 돈을 들여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임차인 중에도 계약서엔 보증보험 가입해 주겠다고 다 썼는데 나중에 잔금 다 주고 이사한 뒤 허그에 가입하러 가보면 가입이 거절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임대차 계약할 때 집이 위험한지, 보증 가입이 되는지 등을 최소한 확인, 등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임대인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란 것을 보증, 확인하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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