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지난 25일 조선업 상생협약 중간점검 "원·하청 격차 축소 지속" 발표
하청업체 노동자들 "생색내기" 반발
임금체불 지속···업계 "에스크로 제도 원치 않는 하청 있어"
"올 초 원청에서 선제적으로 단가 인상···3월 중 해결될 것"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5일 경기도 성남 삼성중공업 알앤디(R&D)센터에서 열린 ‘조선업 상생협약의 중간점검 및 향후 과제 모색을 위한 1주년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5일 경기도 성남 삼성중공업 알앤디(R&D)센터에서 열린 ‘조선업 상생협약의 중간점검 및 향후 과제 모색을 위한 1주년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조선업계가 하청업체 근로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원·하청 사이 임금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한 지 1년이나 지났지만, 원·하청 간 보상·복지 수준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데다 하청업체 근로자 다수가 최저시급 수준의 저임금을 받아와 한 자릿수 임금 상승률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고용노동부와 조선업계가 추진하는 상생협약 성과를 놓고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청업체 ‘임금체불’이 끊이지 않는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부작용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2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용부는 경기도 성남 삼성중공업 알앤디(R&D)센터에서 ‘조선업 상생협약의 중간점검 및 향후 과제 모색을 위한 1주년 보고회’를 열었다. 고용부와 삼성중공업 등 조선 5사 원·하청 대표 및 상생협의체 전문가들이 모여 1년간 상생협약을 추진한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정부는 이날 그간의 주요 성과로 ▲임금체불 방지를 위한 ‘에스크로’ 도입 ▲하청 근로자 임금 7.5% 상승 ▲신속한 외국인력 도입 확대 등을 꼽았다.

에스크로 제도는 원청이 기성금 지급 시 인건비 항목을 에스크로 계좌에 이체하게 하는 제도다. 하청은 종사자 임금 지급 시 원청 확인 후 지급하게 된다. 이 제도는 지난 2016년 한화오션이 처음으로 도입했고, 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도 등도 올 상반기 내 도입을 결정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는 원·하청이 상생해 자율적으로 해법을 마련하면 이행을 적극 지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원·하청이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논의함으로써 상생협약 체결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정부와 지자체, 원청·협력 업체는 지난해 2월 조선업 원청·하청업체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방안이 주로 담겼다. 원청은 적정 수준의 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인상률을 높이며 물량팀 사용을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원청과 협력사 대표도 상생협약을 통해 이중구조 개선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 이무덕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대표는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있고 국내외 인력이 많이 유입돼 생산인력 부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 했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 또한 해당 협약을 통해 협력사와 성과급을 나누고 복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국 금속노조 조선하청노조지부 노조원들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 금속노조 조선하청노조지부 노조원들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용부, 원·하청 대표와 달리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정부 발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전히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저임금 환경 속에서 위험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원청과 하청의 보상, 복지 수준 격차가 줄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노조 측은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저임금 구조를 지적했다. 워낙 임금이 낮아 임금 상승에도 원·하청 간 격차가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 25일 정부가 하청 근로자 임금이 7.5% 상승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시급 1만원 노동자의 임금이 고작 750원 올랐다는 얘기”라며 “이 같은 임금 인상으로는 하청 노동자의 임금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여전히 1만원대 시급을 받으며 고위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조선 3사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1억원 대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HD현대삼호는 평균 급여액 1억397만원으로 연봉 1억원을 돌파했고, HD현대중공업(9088만원), 삼성중공업(8800만원) 등은 1억원에 가까운 급여를 지급한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연봉 상승률이 13.7%에 이르러 하청노동자 임금 인상률을 크게 웃돌았다.

임금 체불이 계속된다는 점도 “조선업 상생협약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노조 측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하청지회 측에 따르면 한화오션 협력업체에서 2억, 삼성중공업에서 70억원 등 누적된 임금체불은 75억원에 달한다.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각 사가 에스크로 제도를 마련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한화오션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 사진=한화오션

원청인 조선사들은 협력사에 기성금을 제대로 지급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협력사와 하도급법상 약속된 기성금 정산 합의를 통해 매달 기성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협력사의 단기적 경영상 문제로 일부 체불이 발생했다”고 했다. 

원청이 기성금을 제대로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체불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조선업계 이중구조 탓이 크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하청업체가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물량팀에게 재하청을 주면서 기성금보다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하청업체들은 되려 에스크로 제도 적용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에스크로 제도를 이용하게 되면 기성금을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하게 돼 이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임금체불 문제 방지를 위해 원청이 오히려 에스크로 제도 적용을 원하는 상황”이라며 “상생협약이 자율규제 조직인 만큼 원청이 하청에게 에스크로 제도를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조선사들은 임금체불 해결을 위해 기성금을 높이는 등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단 방침이다. 거제지역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기 위해 원청에서 선제적으로 단가 인상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 “각 업체에서 3월 중 체불 임금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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