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료개혁 4대 방안과 내년 예산 의제 추진”···의대 정원은 제외, 확고한 입장  
재검토 주장 전공의와 의협 불참 가능성 높아···교수와 개원의도 의제 확정시 참여 고사할 듯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의정대화를 진행할 의정협의체 의제와 참여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선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 수치를 제외한 의료개혁 4대 방안과 내년 의료 예산을 의제로  테이블에 앉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반면 의료계는 의대 증원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어 협의체가 출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무조정실과 공동으로 의정대화의 구체적 실무작업을 진행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지시로 인해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할 의정협의체 구성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이다. 중요한 정책 현안을 결정하기 위해 정부와 해당 업계가 협의체를 구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현재 의료계 파업이 진행돼 환자들이 진료 받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최대한 시간을 앞당기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에 협의체 구성의 핵심은 의제와 참여자로 파악된다. 협의체 운영 방식 등은 차후 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청주 한국병원을 방문, 병원 심혈관센터장으로부터 심혈관센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청주 한국병원을 방문, 병원 심혈관센터장으로부터 심혈관센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의정협의체가 논의할 의제는 특히 중요하다. 사전 의제가 잠정 결정돼야 이를 토대로 협의체가 구성되고 대화 테이블이 준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료계 대화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의제 등 구체적 사항에 합의해야 협상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정치권 인사까지 나설 정도로 주목받는 의대 정원 2000명 수치는 일단 이번 의정협의체 의제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규모는 브리핑을 시작할 때와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정부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결정한 것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근거 없이 이에 대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복지부 관계자 A씨는 “박 차관 언급처럼 2000명 규모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 4대 방안과 내년 예산안을 중심으로 협의체 의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개혁 4대 방안은 지난달 초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인력 확충과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정책 패키지를 지칭한다.

엄밀히 따지면 의료인력 확충에는 2025학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 확대와 수급추계에 따른 주기적 정원 조정시스템 구축이 포함되기 때문에 의대 정원도 논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복지부가 의대 정원 수치는 의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 의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과 전공의 36시간 연속근무 축소를 통한 수련환경 개선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내년 예산의 경우 윤 대통령이 전날 의료계와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이 발단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충북 청주 한국병원 의료진과 간담회를 갖고 “보건의료 분야 예산 규모가 정해져야 불요불급한 지출을 조정하며 지역의료 인프라 확충, 필수 의료 보상 강화, R&D(연구개발) 사업 등 규모를 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예산 편성 시 보건의료 분야 재정투자를 최우선 고려하겠다”며 “보건의료 재정을 우선 예산에 반영하려면 의료인들이 대화의 장에 나와 의견을 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 

27일 대전시 중구 대사동 충남대학교병원 로비에 충남대학교 의과대학과 충남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교수협의회 및 산하 비상대책위원회 호소문이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27일 대전시 중구 대사동 충남대학교병원 로비에 충남대학교 의과대학과 충남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교수협의회 및 산하 비상대책위원회 호소문이 붙어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의료계가 요청하고 있는 ‘의대 증원 2000명’ 재검토를 정부가 의제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 의료계 단체들이 협의체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대통령이나 정부 의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의대 증원 2000명’이 의제에서 제외되면 참여할 관계자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의정대화가 시작도 전에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서울대병원에서 진행한 간담회에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대학교 총장과 의대 학장 위주로 참석했다.  

우선 의료계 구성원 중 의대 정원 확대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전공의들은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당초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전면 재검토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같은 내용의 의제가 아닐 경우 의정협의체에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는 중론이다.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해당되는 행정처분에 대해 정부는 유예는 하지만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도 참여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 중 하나다.

실제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전공의 행정처분이 철회되는 것은 의사 집단이 법 위에 서겠다는 주장”이라며 “법을 위반한 부분은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가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전공의들도 처음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 분노, 이런 것들로 시작했다면 지금은 좌절과 무관심으로 넘어가는 단계인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이 현재 전공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의료계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경우 ‘초강성’으로 불리우는 임현택 신임 회장이 “정부가 원점에서 재논의할 준비가 되고 전공의와 학생들도 대화 의지가 생길 때 그때 협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혀 쉽지 않은 의정대화를 예고했다. 박 차관이 임 회장에게 대화를 촉구했지만 이른 시간 내 대화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임 회장은 의료계를 위해 구속이나 전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의대 교수들이 모인 전의교협은 이미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기 때문에 협의체 참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개원의 단체인 대한개원의협의회 역시 주 5일 근무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참여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 복지부는 그동안 의료계 대표성이 있는 인사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각 단체를 아우르는 인물로 협의체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성이 부족한 인사로 구성할 경우 협의체 결정을 의료계가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해 의정대화를 하려면 정부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요약된다. 의료계도 일정 부분 양보해야 의정대화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이번 주말까지 흐름이 주목된다. 환자단체 관계자 D씨는 “최근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사망 추정 사례가 전국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했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한발씩 양보해 대화를 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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