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65층 건립 조건으로 ‘데이케어센터’ 설치 요구
주민 반발 거세···“사업 수익성·단치 가치 악영향 우려”
2008년에도 공공기여 문제로 발목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여의도 신속통합기획 1호’ 사업지인 시범아파트가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서울시가 65층 건립을 조건으로 노인요양시설 설치를 요구해 주민 반발이 커지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사업 수익성과 이후 단지 가치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급기야 신속통합기획을 철회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가 여의도 인구를 고려해 노인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선 신속통합기획을 철회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곳은 1971년 준공돼 여의도에서 가장 노후화된 아파트로 꼽힌다. 2022년 최고 65층 22개 동, 2500가구 규모로 짓는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됐다.

주민들이 철회를 요구하는 건 서울시가 용적률 최대 400% 혜택을 주는 대신 기부채납 건축물로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하면서다. 데이케어센터는 경층 치매 등 노인들을 위한 치료시설이다. 전문 의료인이 상주하는 시설로서 이용자는 주·야간으로 통원 치료를 받는 곳이다. 현재 영등포구가 여의도동에 운영하는 구립 데이케어센터는 한 곳으로 여의도동 규모(인구 3만3350명·1만3896가구)에 비해 노인복지시설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민들은 당초 신속통합기획 협의 당시 기부채납시설로 지정됐던 과학체험관과 노인여가시설이 빠지고 기피시설인 데이케어센터로 바꾼 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공익성을 위해 시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데이케어센터가 공공 사무시설 등 다른 시설 대비 사업성이 낮은 데다 향후 단지 가치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오면 직간접적으로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단지 가치 상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단지 내 외부인 출입이 잦아진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데이케어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이 담긴 ‘정비계획 결정 및 정비구역 지정안’은 이미 지난해 10월 서울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 같은 사실이 주민들에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반발을 더욱 키웠다. 

주민들이 데이케어센터 대신 역사문화공간 등 문화시설 설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시가 받아들일진 미지수다. 시범아파트 재건축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은 데이케어센터 건립을 철회하고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서울시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데이케어센터 건립 계획을 백지화하기 위해선 정비계획 변경 후 다시 위원회 심의 절차 등을 다시 밟아야 한다. 규모·형태·시설 등이 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제안이 반려된다면 재심의를 통과할 때까지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신속통합기획 철회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반 재건축 사업으로 전환되면 신속통합기획 확정 전인 2년 전으로 회귀하게 돼 사업 속도가 더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범아파트는 과거에도 재건축을 추진하다 공공기여를 둘러싼 거센 반발이 일어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번째 임기인 2008년 당시 최고 50층 높이의 재건축이 추진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초고층 건축을 허용하는 대신 ‘공공기여율 40%’를 제시해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10년 넘게 재건축은 표류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고령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할 때 서울시 입장에선 노인시설 확충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며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이번에도 재건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데이케어센터는 시범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부분이라 다른 단지에서 추가 마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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