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시 2금융권으로의 머니무브 발생···자금 재분배 기대
뱅크런 방지 효과 미미···디지털 금융 발달로 은행 가지 않아도 인출 가능
예금자보험료 인상돼 대출금리 상승 등 금융소비자 부담 전가 전망도
"당장 논의 재개하기보다 총선 이후 사회적 합의 형성하는 것이 중요"

지난해 3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웰즐리의 실리콘밸리은행 지점에서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지난해 10월 현행 유지로 일단락됐던 예금자보호한도 논의가 다시 등장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겠다는 총선 공약을 발표한 가운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총선 이후 예금자보호한도가 인상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되면 어느 때보다 업황이 어려운 2금융권으로의 머니무브(자금이동)가 발생하면서 자금 재분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방지하기에는 효과가 미미한데다 장기적으로는 예금보험료(예보료) 인상돼 금융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 만만치 않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각종 정책에서 이견을 드러내던 여야가 다음달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도 상향 논의에 불을 지핀 진영은 여당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말 현행 5000만원인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서민·소상공인 새로 희망' 공약을 발표했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은 이미 지난해에 우리가 제안한 바 있다"며 "정부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추진 의사를 밝혔다.

여야가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조치에 같은 입장을 보인 것은 현재 5000만원이 한도가 23년 전 정해져 현재의 경제 규모에 맞지 않다는 점이 크다. 예금자보호제도는 1995년 예금자보호법 제정으로 시행됐다. 초기에는 2000만원까지가 보호대상이었지만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2001년 보호한도는 현재와 같은 5000만원으로 정해졌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국민 소득이 그 사이 몇 배 불어났음에도 예금자보호한도는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01년 1482만원에서 2023년 4405만원으로 증가했다. 정치권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행 보호한도가 낮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은행 기준)가 미국의 경우 25만달러(약 3억2800만원), 영국은 8만5000파운드(약 1억4300만원), 일본은 1000만엔(약 8900만원)으로 우리나라보다 2~6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경제 규모에 걸맞게 예금자보호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예금자보호한도를 5000만원 현행대로 유지하는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으로의 자금 쏠림 우려와 예금보험료 인상에 따른 소비자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꼽았다.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 논의가 재점화된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당시에는 자금 쏠림 우려가 있었지만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돼 머니무브가 이뤄진다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축은행업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예금이 유일한 자금조달 창구다. 지난해 저축은행 수신 잔액은 107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조1000억원(10.9%) 줄었다. 수신 잔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저축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외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이 이동해 저축은행 예금이 16∼25%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머니무브가 발생하면서 자금 재분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한다고 해도 우려됐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방지하기에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와 달리 디지털 금융 발달로 은행을 찾지 않아도 예금 인출이 가능한 상황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뱅크런을 막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은 예금자보호한도가 25만달러이지만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디지털 뱅크런에 25만달러 이하 예금도 줄줄이 빠져나갔다. 

또한 한도를 상향하면 예보료율도 덩달아 오르게 되는데 이는 금융사의 비용 부담으로 확대되고 결국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금융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국내 19개 은행이 지난해 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로 납부한 금액은 1조2948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의 추이를 보면 ▲2019년 9529억원 ▲2020년 1조571억원 ▲2021년 1조1881억원 ▲2022년 1조2429억원 등으로 해마다 보험료로 1조원 넘게 지출해왔다. 최근 금융위원회 예금보험제도 개선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예보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은행 예보료율은 현행 0.08%에서 23.1% 상향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논의를 재개하기보다 총선 이후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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