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실거래 2건에 그쳐
전용 84㎡ 호가, 3억원 ‘뚝’
매물 증가율 강남구 최다
조합장 공백에 불확실성 커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강남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한 부동산 시장의 관심이 빠르게 식고 있다. 조합 내홍으로 27년 만에 뽑힌 조합장이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면서다. 수요자들의 발길이 끊기고 조합 내홍에 피로감을 버티지 못한 매물이 나오면서 실거래가는 물론 호가 역시 수억원씩 하락했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는 올해 들어 지난 1월과 이달 단 2건만 거래됐다. 거래된 매물은 모두 전용면적 76㎡형이었다. 전용 84㎡은 지난해 11월 이후로 거래가 끊겼다. 은마아파트가 4424가구 대단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조한 거래량이란 평가다. 지난해 111건이 거래되며 강남구에서 거래량 1위를 차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거래가 끊기면서 실거래가와 호가도 하락하고 있다. 이달 거래된 전용 76㎡는 1층 매물로 실거래가격이 22억원이다. 지난해 11월 같은 층이 23억7000만원에 팔렸다. 4개월 새 가격이 1억7000만원이 하락한 셈이다. 올해 거래가 전무한 전용 84㎡는 낙폭이 더 큰 모양새다. 현재 최저 호가가 24억3000만원(1층)으로 지난해 11월 실거래가격 27억8000만원(9층)과 비교해 3억5000만원 빠졌다. 매물로 나온 물건이 1층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3억원 넘게 벌어진 건 이례적이란 평가다.

매물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매물 건수는 현재 194건으로 3개월 전인 127건과 비교해 52.7% 증가했다. 강남구 아파트 단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매물량은 20일 기준 지난해 12월 124개, 지난 1월 135개, 2월 20일 147개로 점차 늘더니 이달 들어 가파르게 증가했다.

은마아파트는 부동산 침체가 시작됐던 2022년 말 강남구에 아파트가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유일하게 거래가 이뤄졌던 단지다. 당시 강남구 아파트 거래 43건 중 11건이 은마아파트였다. 지난해엔 조합설립인가(9월 26일)를 앞두고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낮아진 가격에 저가 매수가 이어진 가운데 조합설립 전 조합원 자격을 얻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은마아파트는 투기과열지구에 속해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된다.

다만 10년을 보유하고 5년을 거주한 1가구 1주택 집주인은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있다. 시장에선 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 매물이 줄고 가격도 강보합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도 조합설립인가가 나면 매물이 확 줄며 최소 2~3억원을 더 올려 팔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오히려 매물이 늘고 가격이 하락하는 등 시장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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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조합 내홍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은마아파트에선 현재 조합과 비대위격인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설립 및 조합장 선출 총회에서 최정희 조합장이 당선됐는데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 측이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투표함이 무방비 관리되는 등 투표 절차상에 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최 조합장의 직무도 정지됐다. 최 조합장은 항고한 상태로 이 과정에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으로 변호인단을 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의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은마아파트는 이번 소송전으로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 1월 말 서울시에 제출 예정이던 49층 변경안도 무산됐고 병행해 준비 중이던 건축심의도 중단됐다.

주민들 사이에선 추가 분담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전용 76㎡ 소유자가 84㎡를 받을 경우 3억5000만~4억원 정도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은마의 경우 소형 평형 위주로 구성돼 있어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열려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은 속도가 생명인데 은마아파트의 경우 사업이 언제 다시 정상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며 “분담금 등 각종 불확실성이 커 시장의 관심이 빠르게 식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는 1996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해 2003년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2010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그러나 주민 간 갈등이 생기며 사업이 늦어졌다. 인허가 과정에서도 서울시와 갈등을 빚으며 ‘만년 재건축 추진 단지’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고 추진 27년 만에 조합이 설립되며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계획안에 따르면 기존 14층, 28개 동, 4424가구였던 아파트는 35층, 33개 동, 5778가구로 탈바꿈한다. 2027년 착공해 2030년 입주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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