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나의 위로

모든 이들이 집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어치료사이자 주얼리 브랜드 '알로하무드'의 주인장인 이예솔 씨는 ‘견디며’ 살아야 했던 집들을 거쳐 비로소 매 순간 위안이 되어줄, 진정한 의미의 ‘집’에 당도했다.

아일랜드 식탁을 없애고 싱크대를 넓게 배치한 주방.중앙에 놓인 식탁은 2UC @2uc_official 제품.
아일랜드 식탁을 없애고 싱크대를 넓게 배치한 주방.중앙에 놓인 식탁은 2UC @2uc_official 제품.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삶

공간의 영향을 유독 많이 받는 이들이 있다. 이예솔 씨 역시 그랬다. 지금의 집을 만나기 전까지 예솔 씨는 집을 ‘견디며’ 살았다. 위안이 되어야 할 공간인 집이 견뎌야 할 대상이 된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예솔 씨는 지금의 집에 살게 되기 전, 낭만적인 정원 생활을 꿈꾸며 구옥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주택에서의 삶은 그녀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산에 맞춰 선택했던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그만큼 손봐야 할 곳이 많았죠.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고쳐야 할 곳이 보인다는 게 정말 괴로웠어요. 공간이 가진 힘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거든요. 워낙 낡은 집이라 새로 짓는 게 아닌 이상 제 마음에 차는 공간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옆 건물과도 너무 가까워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모두가 꿈꾸고 바라온 집에 살 수는 없다. 해가 들지 않아 피어난 곰팡이는 말끔히 닦아내고, 삐걱거리는 오래된 경첩은 새것으로 바꾸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예솔 씨에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조건 중 1순위를 차지하는 건 따뜻한 햇살. 식물에게 태양이 필요하듯 예솔 씨에게도 젖은 마음을 바짝 말려줄 햇살이 필요했다. 주택에 사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점이 채광이 었던 만큼, 큰 창으로 종일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금의 집을 본 순간 이사를 결심했다. 오래 머물 생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구조는 물론 자재 하나하나 모두 취향에 들어 맞는 것들로 신중하게 골랐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구조와는 조금 다르길 바랐어요. 대부분의 아파트 주방에 자리하는 상부장과 아일랜드 식탁을 없애고, 벽면을 싱크대로 채워 최대한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죠.” 거실은 소파와 TV가 마주 보는 일반적인 구조 대신 가족 구성원 각자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나 라운지를 닮은 구조를 택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소파, 잠시 앉아 쉬어가고 싶은 책상을 둔 거실은 지금의 집에서 예솔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삿짐을 푼 지 이제 겨우 네 달. 예솔 씨는 조급한 마음은 접어두고 집 안 구석구석을 좋아하는 물건으로 천천히 채워가는 중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민 주방. 다용도실 문의 투명한손잡이는 직구로 구입했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민 주방. 다용도실 문의 투명한손잡이는 직구로 구입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을

집 안 곳곳에 두어보세요.

제가 말하는 ‘공간의 힘’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빈지티 제품을 디깅하다 구매한 벽시계와 그릇.
원목 서랍장과 펜던트 조명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 부부의 침실.
원목 서랍장과 펜던트 조명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 부부의 침실.
알로하무드 @aloha mood의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는 작은 작업실.
알로하무드 @aloha mood의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는 작은 작업실.

 

치유의 힘을 믿으며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며 원석 주얼리 브랜드 알로하 무드를 운영 중인 이예솔 씨. 말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언어를 되찾아주는 일과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일은 서로 많이 달라 보이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치유를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어요. 원석은 자연에서 온 광물이다 보니 실제로 각기 다른 치유의 힘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제가 만든 작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해요. 그럴 때마다 2가지 일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느껴요.” 앞서 말한 것들이 타인의 치유를 위한 일이라면 집을 꾸미는 일은 예솔씨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행위. 내가 머물 공간을 돌보는 건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바라왔던 집에 사는 요즘 예솔 씨는 전보다 자주 행복하고, 전보다 자주 웃는다. 볕 좋은 날엔 이불을 말리듯 가만히 누워서 햇볕을 쬔다. 견뎌야 할 것들이 사라지니 비로소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됐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 나니 다음 스텝에 대한 계획을 세워볼 힘도 생겼다. 언젠간 오랫동안 꿈꿔온, 낮고 넓은 단층 집을 짓고 싶다고. 원하는 집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을 집 안 곳곳에 두어보세요. 제가 말하는 ‘공간의 힘’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CREDIT INFO

editor     장세현
photographer     김잔듸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