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사랑했던 예술과 거리두기를 했던 10년. 우연한 계기로 예술과 다시 만난 그녀는 삶의 주체를 예술로 옮겼을 때, 그제야 자신의 삶에 진정한 평화가 머무는 것을 경험했다. 운명과도 같았던 그림과의 접점이 만든 집.

다시 예술과 함께하는 삶

미국 대학교에서 페인팅을 전공한 김정선 씨.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교육업에 종사하며 한동안 예술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일에만 매진하며 10년을 보내던 김정선 씨는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회의를 느꼈다. 친한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한 아트페어에 오랜만에 발을 디디면서 자신의 마음에서 꺼진 줄 알았던 예술을 향한 불씨를 다시금 발견하게 됐다. 이윽고 그 불씨는 점차 커져서 정선 씨를 아트 컬렉터의 길로 이끌었다. “컬렉팅이라고 인지하고 시작했다기보다는, 본능적인 선택에 가까웠어요. 제가 감정 표현이 좀 무뚝뚝한 편인데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한 그림을 종종 만날 때가 있거든요.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거는데 어떡해요. 집으로 데려와야지(웃음).” 그렇게 시작한 미술품 수집은 처음에는 일러스트레이션 원화로, 나중에는 드로잉과 페인팅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정선 씨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모은 작품과 앞으로 모아갈 작품을 설치할 제대로 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2년 전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이 집과 처음 만난 순간 곧바로 자신만의 작은 갤러리를 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짐을 모아 새로운 집으로 옮겨오면서 이삿짐 정리에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 가구와 소품은 무조건 집에 들여놓을 작품을 기준으로 골랐다. 그렇게 고른 아이템을 큰 피스부터 작은 피스 순으로 배치한 이후 공간과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하나 벽에 걸어갔다. “공간이 바뀌니 삶도 더 극적으로 바뀌더라고요. 관심사도, 어울리는 사람도 말이죠.” 그림과의 조우와 이 집으로의 이사는 정선 씨의 삶을 이전과 완전히 바꿔버렸다.

스티지데코mastideco.co.kr의 선반 위에 허스탈royaldesign.kr의 비엔다 테이블 램프가 놓여 있다. 흑백사진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김정선 씨의 외할아버지 작품.
스티지데코mastideco.co.kr의 선반 위에 허스탈royaldesign.kr의 비엔다 테이블 램프가 놓여 있다. 흑백사진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김정선 씨의 외할아버지 작품.
수납장은 매스티지데코mastideco.co.kr의 제품.
수납장은 매스티지데코mastideco.co.kr의 제품.
마포구의 어느 빈티지 숍에서 가져온 사인 날인기. 사이에 종이를 넣으면 그녀의 서명이 찍힌다.
마포구의 어느 빈티지 숍에서 가져온 사인 날인기. 사이에 종이를 넣으면 그녀의 서명이 찍힌다.
삶의 중심을 예술로 다시 세워가는 김정선 씨. 미소 짓는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삶의 중심을 예술로 다시 세워가는 김정선 씨. 미소 짓는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저에게 집은 마치 스케치북과 같아요.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는 일처럼

제가 원하던 바를 공간에 담아낼 수 있으니깐요.

추구하는 가치관을 담은 이 집을 토대로

20년, 30년 후에는 저만의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정선 씨가 ‘신진 작가의 방’이라고 명명한 공간. 도자기와 식물, 작품이 하나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김정선 씨가 ‘신진 작가의 방’이라고 명명한 공간. 도자기와 식물, 작품이 하나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이 집에서 유일한 사진 피스가 침실 공간에 놓여 있다. 플로리안 봉길 그로세@bong.kil 작가의 것.
이 집에서 유일한 사진 피스가 침실 공간에 놓여 있다. 플로리안 봉길 그로세@bong.kil 작가의 것.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김정선씨. 그때의 기억을 살려 미국 주택에서 볼 법한 키 큰서랍장을 욕실과 가까운 복도 한쪽에 배치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김정선씨. 그때의 기억을 살려 미국 주택에서 볼 법한 키 큰서랍장을 욕실과 가까운 복도 한쪽에 배치했다.

나를 돌보게 만드는 집

김정선 씨는 공간의 주체를 그림에 두겠다고 결심한 만큼, 리모델링 역시 집을 최대한 갤러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벽은 갤러리처럼 새하얗게 만들고, 천장이 낮은 구축 아파트의 층고 또한 가능한 선에서 최대치로 높였다. 튀어나온 기둥은 굳이 없애기보다, 작품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살렸다. 지금도 작은 작품을 걸어놓는 용도로 잘 활용하고 있다. 거실 벽에는 레일을 설치해 실제로 갤러리처럼 언제든 그림을 설치하고 바꾸기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그녀만의 작은 화이트 큐브에서, 정선 씨는 실제 갤러리의 학예사가 주기적으로 공간에 설치한 작품을 교체하듯 그림을 바꿔 건다. 지금 집의 메인 전시실이라 할 수 있는 거실에는 1999년생 작가 노아 엘 하켐, 1965년생 작가 유근택, 얼마 전 안타깝게 작고한 노은님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나이도, 국적도, 연령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모두 정선 씨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그림이라는 것. 그렇게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지닌 작품들이 한 집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선 씨는 요즘 5분 명상을 주기적으로 하는데, 명상이 끝난 뒤 눈을 뜨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그림으로 가득 찬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새집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이 행복해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며 내면을 다스리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일까, 그동안은 죽기 일쑤였던 식물이 이 집에서는 쑥쑥 자라는 재미를 발견했다. 정선 씨는 이곳에서 예술가였던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그들의 집에서 문인과 작가들과 교유하며 영감을 주고받았듯, 사랑하는 이들과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나눌 예정이다.

김정선 씨가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하며 직접 그려서 드린 그림이 냉장고 한편에 붙어 있다.
김정선 씨가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하며 직접 그려서 드린 그림이 냉장고 한편에 붙어 있다.
증조할머니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던 이름 모를 화가의 습작품.
증조할머니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던 이름 모를 화가의 습작품.

CREDIT INFO

editor     권새봄
photographer      김잔듸
assistant photographer       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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