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연대 등 교수 사직 확산 분위기···의료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 고조
정부는 전국 의대별 정원 조정 결과 20일 발표···사실상 내년 의대 정원 2000명 확정 의미
의정갈등으로 대화나 협상 가능성 낮아···내주부터 전공의 처분→총파업 투표→총파업 수순 예상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의료계의 경우 의대 교수들 사직 결의 흐름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반면 정부는 20일 전국 의대별 정원 배정 발표를 추진하는 등 2000명 증원을 확정하려는 모습이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추진됐던 의대 교수들 사직이 본격화되는 추세다. 우선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회의 후 이날부터 비대위에 사직서를 제출, 오는 25일 일괄 제출키로 합의했다. 연대 의대 교수 비대위도 전날 총회를 열어 사직서 제출을 결정했다. 총회에는 신촌과 강남, 용인 등 3개 병원 교수 1336명이 참석했다. 차의과의대 교수협의회는 현재 의료 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는 물론 전공의와 의대생을 향한 강압 중단, 의대 정원 원점 재논의를 전날 촉구했다. 

13일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을 찾은 어린이와 부모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3일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을 찾은 어린이와 부모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인제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필수의료 담당자 및 전문가들과 협의 없는 정책 중단 △의사 및 학생 대상 행정사법적 불이익 중단 △각 분야 대표성 보유 전문가와 필수 지역의료 장단기적 대안 마련 및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교수협은 “해당 요구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개별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대 의대 교수들도 사직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어 이날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부산대 교수회, 양산부산대병원 교수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발적 사직서 제출을 밝혔다. 교수협의회는 전날 의대 교수 555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 참여한 356명 중 79.5%가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집계했다. 대전 건양대의료원 비상대책위원회는 21일 교수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방식과 시점을 논의키로 하는 등 의대 교수들 사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단, 지난달 20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한 후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비해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되는 시점까지 진료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상대적으로 다소 나은 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의료계는 의정협상과 관련, 일부 혼선이 있었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전날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2000명 증원 수치가 협상 안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언급해 의료계도 기대를 걸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날 서울아산 어린이병원을 방문, 의대 증원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의견을 사실상 거부한 것은 너무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의대 교수들도 신중하게 회의를 갖고 고민 끝에 도출한 결과가 사직인만큼 그 충정에 대해 오해 없기를 바란다”며 “대화나 협상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의료계는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제42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 주수호 후보 선거대책본부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에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기를 전제로 한 대화의 장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이같은 정책은 국민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부추기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붕괴를 조장한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17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머리를 만지며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7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머리를 만지며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반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등 원칙에 따른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2025년 전국 의대별 정원 조정 결과를 20일 공식 발표한다고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20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진행한 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원된 정원 2000명의 80%(1600명) 가량이 비수도권에 나머지 20%(400명) 정도가 수도권에 배분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같은 정부의 의대별 정원 조정 결과 발표는 적지 않은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분석된다. 예정대로 정부가 20일 발표하면 국민들은 내년 입시에서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의료대란도 있지만 이슈 초점은 현실적으로 정원이 늘어난 의대 입시와 고3, 재수생 등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현재도 파업 여파로 일부 고착화된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 의대별 정원 조정 결과가 확정돼 발표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번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해 나가겠다”며 “특정 직역에 밀려 번번이 실패해 온 의료개혁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다. 정치적 이유로 보건정책이 후퇴하면 피해는 국민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가기 때문”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의사 직역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던 정부의 개혁 주도권과 자존심을 회복하고 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0일 이후 정부의 정책 시나리오는 예상 가능한 수준이다.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 대상 행정처분이 다음 주 개시되면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이 총파업 돌입을 위한 투표를 제시하는 절차가 예상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누가 의협 회장에 당선되든 대정부 강경 투쟁을 주도할 수 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돼 있다. 현재 분위기를 감안하면 투표를 통해 의료계 총파업이 확정되고 총선거 전 파업 강행 수순이 거론된다.

이같은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선 전격적인 정부 조치나 국회 등 제3세력 중재, 의정협상 등이 진행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로 분석된다. 만약 총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환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자단체 관계자 D씨는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환자들 고통은 표현이 힘들 정도”라며 “의정갈등이 파국으로 향할수록 환자들 불안이 심해지는데 이같은 상황이 더는 진행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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