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대교수 비대위, 19개 대학 참여···15일까지 교수 사직 여부 결정, 대표는 방재승
전의교협, 14일 회의서 집단행동 여부 결정···9일 결론 도출 실패, 오늘은 합의점 도출 전망
의협 비대위와 대전협은 정원 확대 재검토 유사···의협 회장 당선인은 강성 인물 유력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전공의 파업에 이어 의대 교수들 사직이 임박한 가운데 의료계 복수 세력이 각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어느 세력과 협상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의료계 다수 세력이 2000명 의대 정원 확대의 원점 재검토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대화 자체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14일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 규모인 2000명 수치를 협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날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브리핑에서 “그동안 정원 문제를 두고 특정 직역과 협상한 사례는 없었다”며 “협상하지 않으면 환자 생명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제안에는 더욱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차관의 이같은 언급은 의료개혁 핵심으로 정부가 확정한 2000명 의대 정원 확대는 양보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최근 하루에 1건씩 의료계를 배려한 정책 시리즈를 발표하며 현재보다 나은 의료 환경을 약속하는 상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소아 중증진료 강화를 위해 5년간 1조 3000억원을 지원하고 2세 미만 소아 입원비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같은 흐름의 일환이다. 의료계와 협상 가능성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 A씨는 “의료계에서 정부와 대화에 나서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물밑에서 접촉은 하고 있다”며 “하지만 2000명 증원의 원점 재검토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13일 충북대학교의과대학과 충북대학교병원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의대 1층 대강의실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가진 뒤 퇴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3일 충북대학교의과대학과 충북대학교병원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의대 1층 대강의실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가진 뒤 퇴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의료계와 접촉하는 상황에서 대표성은 커녕 목소리가 다르고 일관된 방침도 없어 대화 자체가 힘든 현실로 분석된다. 실제 최근 다양한 형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상태여서 의료계에서도 일부 혼란과 혼동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당사자들은 좀 더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려는 취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일종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려는 것으로 판단할 소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우선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5일까지 교수들 사직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 하에 활동하고 있어 최근 주목받는 집단이다. 12일 밤 전국 19개 의대 교수들이 회의를 열어 출범한 이 조직 대표는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다. 방 위원장이 정부와 의료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분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복지부도 방 위원장과 접촉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19개 의대는 서울대와 연세대, 울산대, 가톨릭대, 제주대, 원광대, 인제대, 한림대, 아주대, 단국대, 경상대, 충북대, 한양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충남대, 건국대, 강원대, 계명대 등이다. 

참여 의대 규모만 다를 뿐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와 사실상 유사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저녁 온라인 회의를 열어 집단행동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9일 열렸던 비공개 총회에서 결론 도출에 실패했던 전의교협은 이날 어떤 식으로든 합의점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성격과 구성원이 유사한 두 곳의 의대 교수 모임이 하루 차이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정부나 국민들이 보기에 어리둥절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일각의 지적이다. 만약 두 개 모임에서 다른 결론이 도출될 경우 그에 따른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9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비공개 총회를 마친 의대 교수들이 건물을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9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비공개 총회를 마친 의대 교수들이 건물을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두 개 모임이 중요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전국 의대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공통분모는 현재로선 사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울산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11일부터 교수들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받고 있다. 경상국립대 의대 교수들도 전날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 동아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협의회를 결성했다.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89.4%는 전공의나 의대생에 대한 제재가 있으면 사직서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주대 의대 교수들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국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방재승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화 협의체 구성과 의대 정원 확대 1년 유예를 주장한 주체는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였다. 하지만 이같은 요청은 정부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C씨는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대 정원 확대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어 서울의대 비대위와 일정 거리가 있다”며 “결국 서울의대 주장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의협 비대위는 이처럼 정부와 대화를 언급하는 서울의대 비대위와도 결이 다른 상태다. 전공의 파업 초기 서울의대 비대위가 박민수 차관과 회동한 것에 대해서도 의협 비대위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최근 의협 비대위 집행부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어 더욱 어수선한 상황이다. 대전협 비대위는 의대 정원 확대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어 의협 비대위와는 입장이 유사한 상황이다. 대전협은 의료법 제59조의 업무개시명령은 ILO(국제노동기구) 강제 노동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며 ILO에 개입을 요청한 바 있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지난 11일과 12일 진행된 조 장관과 전공의 회동에 불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차기 의협 회장은 오히려 정부와 대화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은 분위기여서 주목된다.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 투표로 진행되는 제42대 의협 회장 선거에서 당선되는 후보는 당선 직후부터 활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회장이 공석이기 때문에 의협 회장 당선인 자격으로 활동이 문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협 회장 선거가 사상 최고 강성 인물을 선택하는 흐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당선 후 정부와 협상에 나설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정부의 물밑접촉에 응하는 의료계 인사 숫자가 적은 상황에서 협상 자체가 개시될지 의문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로선 의대 교수들 사직이 확정될 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환자단체 관계자 D씨는 “의료계가 잇달아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환자들 생명이 위협받는 상태”라며 “정부와 의료계 기싸움으로 인해 환자들만 지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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