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49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마음 

화려하지 않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행위가 아닐까. 버려지고, 오래되고, 사라지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탐구하며 버려진 것들의 미학을 선보이는 김우영 작가를 만났다.

김우영(1960~)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소호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각종 패션·럭셔리지의 사진 디렉터를 맡아 활약했고, 잠뱅이, 스톰, 아모레 퍼시픽 등 여러 브랜드의 상업사진을 담당했다. 이후 상업사진 활동을 중단하고, 파인아트로 방향을 전환해 2010년대 중반 미국의 대자연을 촬영한 작품들을 시작으로 한옥, 건축물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MARK TETTO

마크 테토는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3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한옥을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작가의 작업실. 
한옥을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작가의 작업실. 
작품 활동을 위해 한 대의 카메라면 충분하다고 김우영 작가는 말한다.
작품 활동을 위해 한 대의 카메라면 충분하다고 김우영 작가는 말한다.
세운상가 안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전경. 원래 은행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자 건물 내에서 꽤 넓은 곳에 속한다.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와 철제 가구를 비롯해 맞춤 수납장까지 모두 그의 아이디어.
세운상가 안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전경. 원래 은행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자 건물 내에서 꽤 넓은 곳에 속한다.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와 철제 가구를 비롯해 맞춤 수납장까지 모두 그의 아이디어.
카메라를 꺼내 보여주는 김우영 작가
카메라를 꺼내 보여주는 김우영 작가

 

보통 사진은 빛의 예술이고 찰나를 기록한다고 하는데요,

저에게 사진은 제가 관찰한 그 시간을 의미하는 거예요.

완전히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파악한 상태에서 기록하려고 하죠.

저에게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 아닌, 시간의 의미를 담고 기록하는 예술이죠.

 

김우영 작가는 작업실 같은 층에 주거 공간도 마련했다. 혼자 지내기 알맞은 크기로, 아일랜드 위에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병풍을 둘러 공간을 분리했다.
김우영 작가는 작업실 같은 층에 주거 공간도 마련했다. 혼자 지내기 알맞은 크기로, 아일랜드 위에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병풍을 둘러 공간을 분리했다.

버려진 것들을 위한 시

반짝이는 것들은 주목받는다. 누구나 쉽게 알아본다. 하지만 그 뒤 그 늘진 곳에 있는 것들은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 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반짝이는 것보다 더 마음이 간 다. 왜일까.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해 반갑고도 미안한 마 음 때문이라도 한 번 더 보고 마음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 진가 김우영의 작품은 그런 마음을 어루만진다. 한옥을 촬영한 ‘평정 의 시학’ 시리즈를 감상하다 보면 ‘내가 그동안 한옥을 잘 못 봐왔구 나’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들이라 눈길조차 가지 않았던 부분들이, 사진가 김우영의 시선에 의해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탄생한다. 쇠락 한 도시의 낡은 건물들이, 자연의 깊숙한 품이 작가의 오랜 관찰을 통 해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때 화려 한 도시의 가장 반짝이는 것들을 촬영했던 작가가 음지로 시선을 돌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 오래되고, 버려지고, 사라 지는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미지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혜안이 생길 것만 같다.

오래전에 사용한 확대기 위에 작가가 촬영한 패션 사진 필름들이 놓여져 있다.
오래전에 사용한 확대기 위에 작가가 촬영한 패션 사진 필름들이 놓여져 있다.
김우영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마크 테토.
김우영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마크 테토.
예전 은행의 금고였던 공간을 터서 작은 응접실로 꾸몄다.
예전 은행의 금고였던 공간을 터서 작은 응접실로 꾸몄다.
작업실에서는 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는 김우영 작가.
작업실에서는 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는 김우영 작가.

M 안녕하세요! 멋진 작업실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운상가에 이렇게 넓고 멋진 작업실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제 작업실을 잘 봐주어서 고마워요. 세운상가는 제가 존경하는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이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예요. 대부분 작은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가 사용하는 곳은 예전에 은행이 있던 공간이라 비교적 넓은 편입니다.

M 평소 오래된 건축물을 좋아하셨어요?

네. 제가 대학교에서는 도시계획 을 전공했고, 사진부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촬영했어요. 제가 관심이 있었던 곳들은 오래되고 버려진 건축물이나 뒷골목 같은 곳이었죠.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건축물이나 공간을 일부러 찾아다니 면서 촬영했어요. 그러다 사진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그때도 맨해튼보다는 브루클린 같은 노후하고 오래된 동네들을 다녔습니다(웃음).

M 촬영 장소는 주로 어떻게 결정하세요?

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 는데 그때 주기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촬영할 곳들을 둘러봐요. 보통 12월에 미국에 들어가면 차로 두 달 동안 대륙을 돌면서 촬영지를 물색합니다. 주로 사람이 떠나고 버려진 도시라든지,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이 그 대상이에요. 같은 곳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그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촬영 계획을 세웁니다. M마음에 드는 스폿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촬영하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여러 번 방문하고 기록한 후에 최종적으로 촬영하신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집 니다. 보통 사진은 빛의 예술이고 찰나를 기록한다고 하는데요. 저에게 사진은 제가 관찰한 그 시간을 의미하는 거예요. 완전히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파악한 상태에서 기록하려고 하죠. 저에게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 아닌, 시간의 의미를 담고 기록하는 예술이죠.

M 작가님의 사진은 색감도 공간도 마음을 끌어당기지만, 시간의 흐름을 담고 기록한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아마도 다른 사진가하고는 접근 방식이나 작업관이 다르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M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졸업 후 소호에 스튜디오를 열고 활동했어요. 당시에도 도시의 이면이나 소외된 장면들을 주로 촬영했는데, 어느 날 한국의 어떤 기업에서 잡지를 창간하는데 저에게 디렉팅을 부탁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 중에 제임스 무어라는 유명한 패션 사진가가 계셨는데, 그분과 작업한 레퍼런스를 보고 연락을 했던 것 같아요. 뉴욕에 미련도 있었지만, 새로운 일을 도 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1996년 귀국해 패션지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M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것이었네요. 어떠셨어요?

그동안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들이었고, 또 저만의 스타일을 한국에서 관계자들에게 설득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이었는데, 저는 비 오는 날 밖에서 찍거나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거든요. 패션 디자이너 들이 자기만의 디테일이 사진에 잘 안 보인다고 항의한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니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정말 많은 브랜드에서 제 사진을 좋아해 주는 거예요. 365일 중에 360일을 촬영했고 부와 명성이 쌓였어요. 온갖 백화점에 제가 촬영한 사진들로 도배된 게 눈으로 보였죠.

M 와우,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한 사진작가셨네요!

정말 화려한 시절이었죠. 다만 그만큼 소진되는 속도도 빨랐어요. 제가 뉴욕에서 공부하고, 쌓아온 내면의 어떤 것들이 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5년을 정신없이 달렸더니, 그사이 세상도 많이 바뀌었고요. 필드의 작업 방식과 환경이 급변하는 것을 체감하면서 떠나야 할 때를 감지했습니다. 2003년도에 커머셜 활동을 중단했어요. 다시 뉴욕에 갈까 고민도 했지만, 다시 파인아트 쪽에서 활동하는 게 왠지 자신이 없더라고요. 한 5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방황하다가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다시 빈손으로 미국으로 떠났어요.

M 다시 미국을 선택하신 이유는요?

미국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죠. 한 3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둘러보며 여행만 했어요. 그냥 자연을 바라보고 음악을 듣고. 그러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더라고요. 사막과, 그 옆의 쇠락한 작은 도시를 촬영하며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M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군요. 저는 작가님이 한옥을 촬영하신 사진도 참 좋아합니다.

자연과 소도시를 촬영한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인기가 좀 있었어요. 그덕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게 됐고, 모국에서도 자연과 공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변에서 한국적인 공간을 촬영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전남 담양의 소쇄원을 찾았는데 폭설로 고립된 거예요. 며칠을 갇혀 있다 보니 한옥의 선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M 버려지고 사라져가는 공간이나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한옥도 특별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소쇄원에 갇힌 게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계속 바라보니 한옥의 자연스러운 선들이 화선지 위에 그린 캘리그라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M 한옥은 자로 잰 듯 완성한 건축물이 아니고 오히려 ‘불완전함의 미학’을 보여주잖아요. 작가님의 작품은 그 점을 정말 잘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철저히 계산해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제 안의 감정이 움직여야 작업을 하거든요. 한옥도 그런 계산적이지 않은 매력이 있죠.

M 카메라는 어떤 걸 사용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예전에는 다양한 기종과 렌즈를 쓰면서 여러 기법과 기교를 연마했는데, 지금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기능이 있는 카메라와 왜곡이 없는 렌즈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사진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정직하고 제대로 기록하려면 카메라도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M 뉴욕에서부터 버려진 장소,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또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연을 만났고, 그 안의 버려진 마을과 건축물에 관심을 갖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흐름까지 작품에 담으셨어요. 그런데 작가님의 작품 콘셉트와 잘 맞 아떨어지는 작업실을 완성하신 것도 정말 멋있어요.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어디에서도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한국에서 작업 과 전시가 늘어나면서 정착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 시절 자주 오갔던 청계천 옆의 세운상가가 좋겠다고 생각은 했었죠. 하지만 원하는 작업실 공간을 찾기 쉽지 않았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이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 어요. 앞으로 자주 놀러 오세요!


CREDIT INFO

editor     심효진
photographer     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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