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 대표에 중앙회 인물 밀었지만
'지배구조 개선 강경입장' 금융당국이 제동
강 회장, 지주·은행에 예전만큼 영향력 행사할까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 사진=농협중앙회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 사진=농협중앙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과 동시에 NH투자증권 대표 선임에 변화를 가져오려 했지만 좌절됐다. 금융당국이 중앙회장의 인사권 개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를 비롯한 금융사의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강 회장이 농협 계열사 인사에 과거 중앙회장들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NH투자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차기 대표 최종후보로 윤병운 NH투자증권 투자금융(IB)1사업부 대표 부사장을 선임했다. 1967년생인 윤 후보자는 커버리지(분석) 분야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은 대표 ‘베테랑’ RM(영업 담당)이다. 그는 정영채 사장과 함께 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추며 ‘수익성 중심의 경영 철학’으로 투자은행(IB)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번 인사는 강 회장이 그간 관례를 깨고 중앙회 출신 인물을 내정하려고 해 관심이 모였다. 최종후보자군(숏리스트)에 포함된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낙점’한 것으로 전해진다. NH투자증권은 그간 중앙회가 인사권을 비롯한 경영 전반에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강 회장이 인수 10년을 맞은 NH투자증권이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선 ‘농협맨’인 유 전 부회장이 적합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인사 개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날 취임과 함께 진행된 NH투자증권 인사에서 결국 뜻이 관철되지 않은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이 나섰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중앙회가 NH투자증권의 모기업인 농협금융지주를 거치지 않고 계열사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봤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7일 농협금융지주를 시작으로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에 대한 검사에 들어갔다. ‘중앙회→농협금융→금융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광범위하게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당국이 나서자 김 회장도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일각에선 김 회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농협은행장 인사에도 과거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의견이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에 고삐를 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발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도 이를 위해서다. 당국은 이전부터 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와 계열사 인사에 개입하는 것에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특히 금감원이 농협금융을 검사하는 또 다른 이유로 농협생명·손보 대표에 보험 경험이 없는 인물이 임명된 점이 꼽히는 것도 강 회장에겐 부담이란 평가다. 윤해진 농협생명 대표, 서국동 농협손보 대표 모두 농협 상호금융, 농협은행 등에서 예대사업 및 IB 경력은 있지만 보험업을 맡아서 한 경력은 없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실제론 중앙회의 자회사인 농협금융·경제지주 뿐만 아니라 지주가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의 인사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농협금융 인사는 금융권 전체의 시선이 쏠린다. 농협금융은 연결 기준 총자산이 530조가 넘는 대형 금융지주사기 때문이다. 중앙회장이 인사권으로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셈이다. 지주 아래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농협생명·손해보험 등 9개의 자회사가 있다. 

그간 농협중앙회장이 바뀌면 농협금융지주 회장, 농협은행장 등 계열사 CEO들은 임기가 남아있어도 교체됐다. 지난 2020년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그해 초에 1년 추가 임기를 받았지만 중앙회장이 김병원에서 이성희로 교체되자 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모두 올해를 끝으로 2년 임기를 채운다. 또 윤해진 농협생명 대표도 올해로 공식 임기를 마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NH투자증권 인사는 늘 하던대로 내부 출신이 선임됐지만 금융당국이 나섰다는 것이 특이점”이라며 “농협 내 중앙회장의 권한이 아직 막강하지만 당국의 움직임에 따라 계열사 인사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달라 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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