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98개 진료지원 행위별 가능 업무 규정···간호계, 합법화에 의미 부여
현장에서는 의료사고 발생 등 우려···실제 사고 발생 시 간호사는 법적 책임에 노출
의사 부족으로 사망선고 지시 등 부작용 가능성···“병원장 지시에 간호사 거부 쉽지 않다”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오늘부터 PA 간호사 진료행위 중 일부가 합법화됐다. 이에 그동안 불법 논란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간호사가 진료에 참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이 적지 않다. 반면 PA 간호사가 진료행위를 하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서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후 진료를 거부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들이 일부 진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이 지난달 27일부터 실시됐다. 이어 이날부터는 정부가 규정한 진료행위를 간호사들이 수행할 경우 보건의료기본법상 시범사업 수행에 따른 합법이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란 의사 진료를 보조하는 전담간호사로 뜻한다.

간호사별 수행 가능한 주요 진료지원행위. / 사진=연합뉴스
간호사별 수행 가능한 주요 진료지원행위. / 사진=연합뉴스

전날 복지부가 공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 따르면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로 구분해 업무범위를 정하고 의료기관의 교육과 훈련 의무를 명시했다. 전문간호사는 추가 자격시험을 따로 통과한 간호사를 지칭한다. 전담간호사는 앞서 설명한 PA 간호사를 의미한다. 복지부는 전담간호사는 해당 의료기관장이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침은 건강 문제 확인과 감별, 검사, 치료와 처치 등 총 10개 분야에서 98개 진료지원 행위를 구분,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했다. 지침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앞으로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약물 투여가 가능하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와 약물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수술 부위 봉합 등 수술행위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의료기관은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담간호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업무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특히 관리와 감독 미비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면 최종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지도록 했다. 의료계와 병원계에 따르면 이번에 규정된 전담간호사 업무범위는 그동안 현장에서 실제 진행되던 행위다. 그동안 불법이었지만 일단 이번 지침으로 합법화가 개시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간호계는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업무범위 결정으로 인해 그동안 불법행위에 내몰렸던 간호사들이 합법적으로 진료행위를 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합법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의료대란 여파로 의사 권한 축소와 타 직역 권한 강화를 검토하는 정부가 한시적이지만 PA 간호사 합법화를 꺼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사안으로 꼽힌다. 이에 간호계는 간호법 제정 재추진을 촉구하는 등 변화된 정책 동향을 실감하는 분위기다.

이동하는 간호사들 모습. / 사진-연합뉴스
이동하는 간호사들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의료 현장 관계자들은 직역에 관계 없이 간호사들이 현재도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의료사고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핵심은 법적 책임 여부다. 익명을 요청한 병원계 관계자 A씨는 “간호 직역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차원은 아니며 오히려 현장 간호사와 환자들을 우려해서 하는 언급”이라고 전제하고 “정부는 관리와 감독 미비에 따른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종 법적 책임을 기관장이 진다고 하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하면 간호사에게 일단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며 관리와 감독 미비 기준도 애매하기 때문에 간호사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의료대란 대책을 담당하는 정부 직원들이 종합병원 현장을 찾지 않아 최근 목소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도 불만사항이다. 병원계 관계자 B씨는 “의료대란이라고 하지만 PA 간호사 합법화는 신중한 사전 연구와 검토를 거쳐 해야 하는데 준비 없이 시범사업 형태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의료사고로 기소까지 갈 경우 복지부 지원은 한계가 있고 정상 참작에만 활용될 뿐 간호사들은 그대로 법적 책임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법적 책임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병원장과 간호사의 관계다. 간호사들이 병원장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역학구도에서 여러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병원계 관계자 C씨는 “최근 논란이 됐는데 의사가 없어 대신 간호사에게 환자 사망선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도 간호사는 거부할 명분이 없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담간호사는 병원장이 지정하는데 현장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할 경우 기관장이 경력이 부족한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지정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의료대란으로 업무가 늘어난 간호사들이 향후 진료행위까지 떠맡게 될 경우 느끼게 될 정신적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우려된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병원계 관계자 D씨는 “경력이 많고 노련한 간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낫지만 업무에 힘들어하는 간호사들이 진료로 부담감을 느끼면 주변도 흔들릴 수 있다”며 “단순하게 의사와 간호사라는 직역 차원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현장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관계자 E씨는 “지금 현장에서는 일부 출근한 전공의와 전임의, 의대 교수들이 간호사와 합쳐 힘들게 지탱하고 있다”며 “종병을 방문해서 보면 누구나 의료대란 한달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오늘부터 PA 간호사의 일부 진료행위가 합법화되면서 불법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단 가라앉을 전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PA 간호사의 법적 책임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 더 이슈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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