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억 배상’ 판정문에 핵심 항목·하나금융지주 임원명 등 비공개
정부가 비공개 내용 정해 통보, 론스타 동의···쌍방 협의 내용 법원에 제출
정보공개 행정소송서 확인···“행정부처 재량 행사 적법·타당 여부 확인해야”

론스타 사건 영문 판정문에 사건 관련자의 이름이 까맣게 색칠돼있다. / 사진=법무부 보도자료
론스타 사건 영문 판정문에 사건 관련자의 이름이 까맣게 색칠돼있다. / 사진=법무부 보도자료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3100억원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사이 투자자-국가 국제분쟁해결제도(ISDS) 사건 판정문의 ‘비공개 정보’를 한국 정부가 먼저 정해 제안했고, 론스타 측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22년 9월28일 보도자료를 통해 판정문을 공개하면서 핵심 항목 및 다수의 각주, 하나금융지주의 임원 이름 및 정부 공무원의 이름 등을 선별적으로 공개해 논란이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7일 민변 송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가 판정문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비공개처분 취소소송’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변론이 종결됐다가 재판부의 석명준비명령으로 재개됐다. 재판부는 중재판정부의 기밀유지명령 내용과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상호 비공개 정보를 조율한 내용 등을 확인하겠다며 두 차례 변론기일을 추가로 진행했다.

이날 법무부 측 대리인은 론스타 측과 비밀 유지를 조율하면서 주고받은 이메일 사본을 재판부에 비공개(in-camera: 대외비 자료를 재판부만 열람가능하도록 제출하는 방식)로 제출했다. 법무부는 또 준비서면을 통해 판정문 공개 및 가림처리할 비공개 정보를 어떻게 조율한 것인지도 밝혔다.

시사저널e 취재에 따르면, 법무부는 판정 선고 다음날인 2022년 9월1일 론스타 측에 판정문 공개 및 가림처리할 비공개 정보에 대한 의견을 문의했다. 하지만 론스타 측의 회신이 지연되자, 비공개할 내용과 사인의 성명을 ‘먼저 정해’ 론스타 측에 동의 여부를 확인(9월21일)했다. 5일 뒤 론스타가 정부 측 제안에 동의했으며, 9월28일 론스타 판정문이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됐다.

법무부는 외교부를 비롯한 여러 관계부처와 협의해 기밀유지명령(중재판정부 절차명령) 상 비밀정보임이 명백한 외교기밀과 양측 증인 등 사인의 성명을 제외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는 ICSID 협약 및 중재판정부의 기밀유지명령에 따라 원칙적으로 비공개 정보인 판정문 중, 외교기밀과 개인정보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개할 것을 론스타 측에 먼저 제안했고, 론스타 측이 이를 수용하여 정부가 판정문을 공개한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비공개 정보를 정한 ‘임의성’을 지적한다. 판정문 공개 범위를 정하는 데 행정부처의 권한 행사 및 재량권 행사가 적법하고 타당했는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또 중재재판 과정에서 쌍방이 기밀의 범위를 조정하며 주고받은 내용을 우리 사법부가 직접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법원이 중재재판 절차과정에서 행정부의 대응을 확인하고 통제한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와 같은 거액의 국제중재사건에서 투명한 정보공개의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오는 5월16일 선고기일을 지정했다.

2022년 8월31일 ISDS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이 ‘투자보호협정의 공정 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해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사이의 2011년 7월 외환은행 주식 양도계약 등에 개입했다며 대한민국이 론스타에 2800억원을 배상(이자 포함시 약 3100억원)하라고 판정했다.

송 변호사는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문에 우리 정부가 패소한 핵심 내용, 하나금융지주 임원의 이름 등이 비공개됐다고 주장하며 정보공개청구에 이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3100억원의 배상 책임을 발생시킨 권한 남용 행위에 금융위원회 등 관계자가 관여된 사실이 판정문을 통해 확인되고, 향후 법률적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판정문 전문 공개가 필요하다는 게 송 변호사의 주장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ISDS 판정에 불복,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취소신청을 제기했다. 정부가 지적한 취소사유는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월권)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이유불기재 등 총 3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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