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신고센터에 환자 사망 2건 접수···복지부 조사로 곧 결과 도출 전망
환자가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가능···객관적 인과관계 입증 필수, 소송 대상은 병원 
입원 환자는 인과 입증 가능, 뺑뺑이는 입증 어려워···전공의도 불법 확인되면 소송 제기 가능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최근 의료대란으로 환자들이 볼모로 잡혀 고통받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환자들이 병원이나 전공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소송 제기는 가능하지만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센터’에는 300건이 훨씬 넘는 피해 사례가 접수된 상태다. 대부분 환자와 그 가족이 경황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로 피해를 입은 사례는 공식 집계의 몇배로 추정된다. 이중 한 임신부가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해 결국 며칠 뒤 태아가 숨졌다는 신고와 지난달 하순 투석 치료를 받던 환자가 혈관 이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지연돼 다음 날 사망했다는 신고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같은 사례는 복지부가 현재 조사 중이어서 조만간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예고된다.

5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학생회관에 가운과 의사국가시험 서적이 버려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5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학생회관에 가운과 의사국가시험 서적이 버려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의료대란이 진행되며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는 사이 환자들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수술과 입원이 지연되는 현실에서 환자 진료에 더 집중해야 하는데 정작 환자들이 뒷전에 밀려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환자단체 관계자 A씨는 “환자들이 요청하는 것은 수술이나 입원 등 생명을 연장하는데 필수 조치”라며 “의대 교수들까지 최근 분위기에 휩쓸리면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 시스템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환자들이 기본 권리를 확보하는 방안이 검토되는데 병원이나 전공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리되기 전 근무지에 출근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환자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의사 파업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입증된 판결의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05년 경북 포항의 한 병원으로부터 환자가 5억 5000만원을 배상 받았던 경우가 꼽힌다.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언어장애와 간질 후유증을 겪은 7세 아동 가족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것이다. 이 사례는 병원의 응급치료 의무 위반과 아동의 후유증 발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 받은 경우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 판결 외에도 환자측이 승소한 사례는 여러 건으로 파악된다. 

단, 앞서 사례처럼 전공의 출근 거부로 인해 해당 환자가 사망했거나 또는 치명적 피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증명돼야 한다는 점이 소송 제기의 핵심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모 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가 당초 수술을 받기로 한 날이 3월 3일이었는데 병원이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수술을 연기한 상황에서 사망했다면 인과관계가 일부 입증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변호사 B씨는 “이같은 사례도 전체 의사가 아니라 의사 중 일부가 부재해 수술이 연기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환자 사망과 연결시켜 입증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며 “병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현재 입원 환자를 퇴원시키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구급차들이 주차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5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구급차들이 주차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입원 환자는 해당 병원과 환자가 일종의 의료계약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소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 응급실을 돌아다니는 ‘뺑뺑이’ 사례의 경우 환자측이 병원에 책임을 묻기 더욱 어렵게 된다. 변호사 B씨는 “도덕적으로는 병원이 환자를 받지 않는 상황을 비난할 수 있지만 전공의들이 파업하는 비상 상황에서 병원이 인적 물적 시설 미비라는 사유로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못 받았다고 주장하면 환자측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난제가 있지만 일단 환자측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은 병원이 적합하다는 것이 변호사들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전공의는 의료행위에 참여한 책임이 아니라 근무지를 이탈한 부작위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개별 전공의에게 책임을 묻기 애매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변호사 B씨는 “환자들이 전공의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려면 그들의 근무지 이탈을 불법으로 판단하는 지를 참고해야 한다”며 “정부가 전공의 단체 집행부를 고발한다고 하니 만약 그들이 재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되면 개별 전공의를 대상으로 소송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송 제기를 준비한다면 환자들은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겨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법조계 당부다. 사소하지만 나중에 재판이 열릴 경우 환자측 주장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수술 예정일이었던 3월 3일 해당 병원 전공의 100명 중 5명만 근무했다는 사실이 복지부 현장점검에는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 C씨는 “전공의 단체도 대형로펌을 접촉해 여러 문제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으려고 했다”며 “최종 어디로부터 자문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형로펌은 정부와 관계를 고려해 고사했다”고 전했다. 결국 최근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환자측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단, 파업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객관적 인과관계 입증이 핵심이므로 관련 자료나 증거 수집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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