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지주 여성 사외이사 잇따라 영입 단행
성별 다양성 확보 움직임···상당수 학계 출신 구성 한계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전문성과 다양성 갖추기 위한 이사진 풀 확대 숙제
모범 관행 마련 이후 이사회 전문성 및 성별 다양성 요구 확대···다양한 시도 이어져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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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국내 5대 금융지주들이 여성 사외이사를 잇따라 영입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미흡 평가를 받아온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사외이사 상당수가 여전히 학계 출신으로 포진돼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추기 위한 이사진 풀 확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 등 국내 5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37명 가운데 27명의 임기가 이달에 만료된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연임 한도를 채웠거나 스스로 사임하는 사외이사의 후임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후임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각 금융지주는 사외이사 수를 늘리고 늘어난 자리에 여성 사외이사를 포진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를 8명에서 9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사내이사를 2명에서 3명으로 추가하는 과정에서 사외이사진의 독립성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동시에 신임 사외이사에 여성인 윤심 전 삼성SDS 부사장을 올리면서 여성 사외이사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오는 22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진이 최종 선임되면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2.5%에서 22.2%로 확대된다.

신한금융지주도 사외이사 추천안을 발표했다. 신한금융지주는 4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후보 추천위원회를 개최하고 최영권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와 송성주 고려대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추천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내 여성 사외이사는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성별 다양성과 전문성에 기반한 폭넓은 의사결정을 통해 ESG 경영을 강화한다는 것이 신한지주의 구상이다.

KB금융지주는 이미 사외이사진 7명 중 여성이 3명으로 42.9%를 차지하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는 기존 사외이사 7명 중 2명(28.6%)이 여성인데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인원 변동 없이 사외이사 수와 여성 비중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지주는 기존 6명이던 사외이사 수를 7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임기 만료로 퇴임한 송수영 사외이사 대신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두 명의 신임 사외이사 모두 여성이다.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6.7%에서 28.6%로 커지게 됐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이번 신임 사외이사 증원은 우리금융 규모에 걸맞은 적정한 이사 숫자를 고려했으며 이사회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며 "이번 이사회 구성 변경으로 전문 분야, 성별 등 다양성이 더욱 화장된 만큼 우리금융의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 비중 확대와 별개로 사외이사 상당수가 여전히 학계 출신으로 구성돼 있어 전문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산업군과 달리 금융회사의 경우 '금융사 지배구조법 시행령' 제8조 제3항(사외이사의 자격요건)에 따라 사외이사 겸직을 제한하고 있다. 여성 사외이사 확대를 통해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주는 것과 동시에 다양성과 전문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외이사 전체 규모 확대와 여성 사외이사의 비중을 늘리는 등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은행 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이 마련된 이후 이사회의 전문성, 성별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수적인 문화로 꼽히는 금융권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울러 사외이사의 교체가 '거수기' 역할탈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KB국민·하나·우리금융지주가 공시한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 체계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이들 금융사 이사회에 올라온 의결 안건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사외이사는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KB금융지주는 이사회가 15회, 하나금융지주 11회, 우리금융지주는 14회 열렸다. 이사회 의결 안건은 주로 인사, 합병·분할, 배당, 경영진 운영 규정, 자사주 소각, 주식교환체결, 회계 분야 등이다. KB·하나·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서는 총 107건의 의결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금융지주 주요 경영 사항인데도 지주에서 제시한 안건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의 겸직이 가능한 일반 산업과 달리 금융사 사외이사는 한 번 맡게 될 경우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를 전혀 맡을 수 없다"며 "학계에 있는 분이 아니면 사외이사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도 후보군들을 찾아다니며 수락을 부탁드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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