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금융주 일제히 하락
금융주 ‘만성 저평가’ 문제 해결하려면 관치금융부터 해소해야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저평가된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주가에 찬물만 끼얹었기 때문이다. 대표적 수혜주로 거론됐던 금융주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된 이후 주가 곤두박질쳤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이 예고됐을 때까지만 해도 주주환원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고 이는 금융주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발표된 내용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강제성 없이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강제 사항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불이익은 없다. 시장에서 실효적 조치가 될 수 없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주는 대표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다. PBR이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대비 주가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PBR이 낮은 기업은 회사가 가진 자산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다. 금융주가 만성적인 저평가를 겪고 있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는 ‘관치금융’이 있다.

은행은 규제산업으로 금융당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주가가 그만큼 오르지 않는 것은 정부 개입이라는 외부 변수가 금융사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지난해 고금리 기조에 힘입어 은행이 역대급 순익을 거두자 정부는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압박했다. 이에 작년 은행권은 3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내놓으며 상생금융에 동참했다. 문제는 이런 상생금융 압박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앞서 지난 1월 금융위원회와 중소기업벤처부는 고금리 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으로 약 188만명에서 1조5000억원 규모의 이자환급과 방안을 내놨고 은행들은 설 연휴 직전까지 1조3600억원의 이자 감경 조치를 완료했다. 다음 달에는 소상공인 임대료 지원 등 6000억원에 달하는 은행권의 취약계층 지원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은행들은 상생금융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수천억원의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수익성은 둔화되고 실적 전망치도 하향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계속되자 시장에서는 금융지주가 높은 실적을 올리더라도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압박도 금융주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인이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배당을 확대하기 보다는 충당금 적립에 힘쓰라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 자제 압박을 받는 금융주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주에 대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실상 ‘관치 디스카운트’라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결국 금융주의 고질적인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입김이 금융사의 실적을 좌우한다는 투자자들의 불신부터 해소해야 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기 이전에 관치금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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