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제재 ‘행정지도’ 의결···제척기간·청렴 서약서 위반 주체 해석 결과
방사청 입찰 때 1.8점 감점···7.8조 원 KDDX 수주전 영향은 불가피할듯

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방위사업청이 군사기밀 유출로 물의를 빚었던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이 ‘부정당 업체’로 지정됐다면 사실상 최대 5년간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게될 예정이었다. HD현대중공업 입장선 국내 주요 함정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는 평가다.

다만 올해 주요 함정사업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 등 사업을 앞둔 HD현대중공업에겐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 자신이 직접 설계를 마쳐 기술력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할지라도 ‘보안사고 감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 숨통 트인 HD현대중공업···방사청 제재 ‘행정지도’ 머문 이유는 

27일 방위사업청은 공지를 통해 “군사기밀 유출로 논란이 된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참가자격 제한 여부를 심의한 결과 제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 방위사업 입찰 참가 자격 적격 여부를 놓고 이날 오후 2시부터 계약심의위원회를 진행했다. 심의 결과 HD현대중공업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는 행정지도로 의결됐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계약심의회를 열고 입찰 참여 제한 관련 안건을 심의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이날 한 차례 회의가 더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의 판단을 존중하며, 국내 함정산업 발전과 해외수출 증대를 통해 K-방산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제재 수위가 행정지도 수준에 머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받고 있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 상 계약이행 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국가계약법상 ‘부정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입찰 참가자격 제한은 5년이 지나면 할 수 없다는 규정도 적용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제척기간을 경과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부정 행위를 인지한 시점인 지난 2018년 4월로부터 이날 심의까지 5년이 지났다고 계산한 것이다.

‘청렴 서약서’ 위반 주체에 대한 해석은 이번 심의의 주요 쟁점이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방사청은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했다. 군사기밀을 불법 취득하고 이를 공유한 이들은 HD 현대중공업 측 ‘대표 및 임원’이 아닌 직원들이라는 해석이다. 이 과정서 대표나 임원의 지시가 내려진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 청렴서약서를 작성했다. 서약서에는 군사 기밀을 포함해 방위사업 관련 정보를 외부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렴서약서 내용 위반 주체가 입찰 참여업체의 대표나 임원이라면, 5년 이내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약 3년간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한국형 차기구축함 관련 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불법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했다. 

이들이 유출한 문건은 ▲KDDX 개념설계 1차 검토 자료 ▲장보고-I 성능개량 선행연구 최종보고서 ▲장보고-III 개념설계 중간 추진현황 ▲장보고-III 사업 추진 기본전략 수정안 등이다. 특히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해군에 납품한 자료인 KDDX 개념설계 도면은 3급 군사기밀로 취급된다.

2023년 11월 직원 9명은 군사기밀 탐지·수집, 누설에 다른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이들 직원에게 각각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입찰에서 보안 감점을 받고 있다.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보안 감점은 1.8점으로 지난 2022년 11월부터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 적용된다.

현대중공업은 “보안 감점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방사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지난해 9월에는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신청했지만 권익위도 법원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날 방사청 심의 결과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KDDX 수주전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KDDX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현재 해군이 쓸 이지스 구축함급 군함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국내 업체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두 곳뿐이다.

당장 올해 중순 시작되는 ‘상세설계·선도함 건조’에 대한 수주전은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이다. 방사청 개청 이래 함정 사업에서 기본설계를 수행한 사업자가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도 맡아왔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입찰 규모는 약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통상 함정 건조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기본설계 전 단계는 한화오션이 맡았다. 

다만 1.8점의 보안감점은 여전히 HD현대중공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HD현대중공업이 받은 보안 관련 감점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2025년 11월까지 유지된다. 

방사청의 함정산업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는 대부분 소수점으로 승패가 갈린다. 지난해 7월 방위사업청은 8334억원 규모의 울산급 배치3(Batch-Ⅲ) 5~6번함 건조 우선협상자로 한화오션을 선정했다. 

HD현대중공업의 패배 요인은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감점이 적용된 탓이 크다. 한화오션은 100점 만점에 91.8855점을 받아 91.7433점을 얻은 HD현대중공업을 0.1422점 차이로 간신히 앞섰다. 기술능력평가 80점 만점에서 HD현대중공업은 72.3893점을, 한화오션은 71.4158점을 받아 HD현대중공업이 0.9735점 높았다.

다만 업체간 기술력 격차는 상당 부분 좁혀졌다는 평가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양사의 기술능력은 거의 비슷하다“면서 “과거 사례를 보면 인력 사정, 건조 능력 등에서 차이가 벌어졌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특수선사업부 수주 목표를 지난해보다 615% 상향 조정했지만, 8조원 규모의 해당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면 목표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로 간주하며, 이에 따라 재심의와 감사 및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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