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급증 사업장 증가로 재건축 단지 시세도 급락 두드러져

공사를 진행중인 수도권 한 아파트 건설현장 / 사진=연합뉴스
공사를 진행중인 수도권 한 아파트 건설현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사비 급등 사례와 이에 따른 분쟁이 번번이 나타나는 영향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반분양을 진행할 예정이던 서울 강남구 청담르엘 발주처인 청담삼익 재건축 조합이 한국부동산원에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분에 대한 검증을 요청했다. 청담르엘 공사비는 2017년 계약 당시 3726억원이었는데, 지난해 말 조합과 협의를 거쳐 6313억원으로 69.4%(2587억원) 증액했다. 해당 안건은 총회에서 통과됐음에도 이후 새롭게 꾸려진 조합 집행부는 전 집행부가 이끌어 낸 공사비 증액 협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사비 과다지출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약 한 달 전에는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 규모라 불리는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 클래스트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에 공사비 인상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했다. 시공사는 3.3㎡당 548만원에서 4년 만에 829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총 공사비 규모로 보면 2조6363억원에서 4조775억원으로 57% 급등한 수준이다. 이에 조합은 최근 조합원에게 공사비 협상단을 꾸려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디에이치 클래스트 인근 소규모 단지인 서초구 신반포22차의 공사비 급등 수준은 더 놀라울 정도다. 2022년 이미 이주를 마치고 철거를 완료한 상태이지만 공사비 협의는 진행 중이다.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17년 3.3㎡당 약 500만원의 공사비로 신반포22차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지만 현재는 건설 원자재 가격 급등 및 고금리 여파가 겹치며 1300만원 선에서 협의 중이다. 공사비 증액이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분양이 임박했다는 소식만 수년째 들려오는 서울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발주처인 잠실진주 재건축 조합에 최근 3.3㎡당 공사비 823만원을 제안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시공사업단이 제안한 889만원에 견주어보면 약 7% 낮아진 수준이다. 시공사는 조합과 원만한 합의를 보기 위해 제안한 것이지만 계약 당시 공사비 3.3㎡당 510만원과 비교하면 61.3% 급증한 값이다. 이 사업장은 2020년 12월 착공이 진행됐지만 2021년 공사부지에서 백제 주거지 흔적이 발견되면서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착공 후 공사기간도 기존 35개월에서 42개월로 길어졌다.

이와 같은 사례가 늘어나다 보니 재건축 단지들도 힘 못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 5단지 전용 31㎡는 지난 2021년 당시 실거래가가 8억원이었지만 이달 초에는 절반에 가까운 값인 4억6000만원에 손바뀜됐다.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해지면서 이 단지 조합원이 84㎡를 분양받으려면 재건축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이른바 영끌로 주택을 사들인 2030이 패닉셀을 하며 집값이 급락하는 것이다. 이 단지 뿐만이 아니다. 상계주공12단지와 14단지 등 노원구 일대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들은 상계주공5단지 분담금 여파로 최고점의 50~60% 수준에 팔리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 특별계획구역 내 대장주인 압구정3구역도 최근 조합원 주택형 선호도 조사에서 추정 추가분담금이 나왔는데, 30평형대 조합원이 동일 평수로 가는 데 3억300만원, 54평형으로 가려면 18억7000만원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갈등은 개별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지금도 전세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데 공급축소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장기화되면 임대차시장에도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