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의료계 반발···대형병원 전공의 이탈 현실화
“치료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닌가”···환자들 불안감 호소·의사 눈치도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아파 죽겠지만, 믿을만한 대형병원이라 몇 달을 기다렸는데...”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최 아무개씨(79)는 지난해 여름부터 극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10여년 전 식도암 수술 후유증과 겹쳐 밤에 누워서 잘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함부로 수술할 순 없어 수개월 전 서울 ‘빅5’ 병원 중 한 곳을 예약해 기다리고 있지만, 최근 의료계 총파업 조짐에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최 씨는 “허리 디스크 같은데 두세 달 전 믿을만한 아산병원에 예약을 잡고 시술을 기다리고 있다”며 “다음달 9일에 잡았는데 의사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혹시 미뤄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너무 아파서 빨리 좀 치료받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계획에 반발한 의료계가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환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주요 대형병원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첫날 현장 곳곳에선 의료대란으로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냔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감이 감지됐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한 의료계 반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은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의료현장을 떠나지 말라는 취지의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지만, 병원 응급 의료 핵심인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면서 환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앞에 응급의료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앞에 응급의료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 내 의사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암 치료를 위해 입원 중이라는 20대 남성 A씨는 “요 며칠 병동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잘 보이질 않는다”며 “당장 진료에 지장을 받는 건 없는데 의사가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단 생각을 하면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40대 후반 여성은 “지난주 목요일에 입원해 수술받고 회복 중인데 요 며칠간 진료 의사 숫자가 줄은 것 같다”며 “원래 병실에 있으면 외래 선생님이 오셔서 진료해줬는데 오늘은 내가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 내 몸인데 100%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특히 몰려드는 서울 소재 대형병원 의료진들이 진료 현장을 이탈하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병원 본관 앞 응급의료 차량에서 내린 50대 환자 보호자는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 광주에서 왔는데, 입원은 안 된다고 해서 신경외과 예약 진료받고 다시 내려간다”며 “환자는 진료받아야 하는데 의사는 파업한다고 하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일부 환자, 가족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의견 표출이 행여 불이익으로 이어질까 언급 자체를 꺼리기도 했다. 기자가 한 남성 입원 환자에게 ‘전공의 의료현장 이탈로 불편한 점’을 묻자 옆에 있던 가족은 환자에게 “얘기하지 마라”를 반복하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다른 소아암 환자 보호자도 “우리 애는 진료 잘받아야 한다. 그런 얘긴 안 한다”며 손사래쳤다.

의료진들의 이탈로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복귀를 촉구하는 한편 의대 정원 의지를 굽히지 않겠단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파업 때마다 환자들이 고통받고 곤란을 겪었다”며 “정부는 또 의료계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이런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비판하며 의대 증원 규모 축소 가능성도 일축했다”고 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 / 사진=최성근 기자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 / 사진=최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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