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서초 시공사 선정 줄줄이 유찰
강남권 단지도 옥석가리기 심화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치솟은 공사비에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조합들은 입찰을 앞두고 공사비를 800만~900만원대로 올렸지만 건설사들은 “사업성이 낮다”며 요지부동이다. 일각에선 공사비 1000만원 시대가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송파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은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유찰됐다. 입찰에 시공사가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말 열린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등 8개 건설사가 참석했다. 현장설명회에서 ‘시공자 입찰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모두 입찰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가락삼익맨숀은 인근 재건축 현장 중 단지 규모가 가장 큰 데다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랜드마크 단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지상 30층, 16개 동, 1531가구 규모 대단지로 탈바꿈한다. 서울 지하철 3·5호선 오금역과 방이역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더블 역세권이라 입지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곳은 강남권에서도 보기 힘든 800만원대 공사비로 주목을 받았다.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6340억원이다. 3.3㎡당 810만원 수준이다. 1000가구가 넘는 재건축 사업지에서 공사비를 3.3㎡당 800만원 이상을 제시한 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서도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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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에선 시공사 선정 입찰이 유찰된 건 공사비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강남권 재건축 특성상 하이엔드 브랜드 선호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정 공사비는 3.3㎡당 900만~1000만원은 돼야 한다”며 “800만원대는 일반 브랜드 수준으로 사업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우성4차 재건축 조합 역시 최근 2차 입찰에서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3.3㎡ 공사비를 760만원에서 810만원으로 올려 시공사 재선정에 나설 예정이지만 입찰 전망은 부정적이다. 이곳은 지하 4층~지상 32층, 825가구 규모로 재건축된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삼전역이 가깝고 단지 앞으로는 탄천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선 900만원대 공사비에도 건설사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7차(210가구)는 3.3㎡당 공사비 907만원으로 입찰을 진행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앞서 연 현장설명회엔 삼성물산,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DL건설, 호반건설, 금호건설 등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제안된 공사비 가운데 높은 수준이지만 건설사들은 “사업성이 낮다”는 반응이다.

시공사가 1000만원대 공사비를 제시한 사업장도 등장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2차(160가구)에선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이 조합에 3.3㎡ 공사비를 1300만원대까지 인상해 줄 것을요구했다. 공사비는 2017년 시공사 선정 당시(500만원)과 비교해 800만원 가량 올랐다. 시공사 측은 원자잿값 상승과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등을 공사비 인상 이유로 들었다. 내년 입주를 앞둔 가운데 조합원 1명당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이 최소 5억원으로 알려지면서 조합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계에선 공사비 인상 여파로 인해 강남권에서도 건설사들의 옥석가리기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라고 해도 무조건 참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수익성이 더 확실한 사업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기조로 수주 전략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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