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거래인 걸 알면서도 송금 허용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수위의 제재 받아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 전경 / 사진=우리은행
서울 명동 우리은행 본점 전경 / 사진=우리은행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이상 외환거래에 대해 무더기 제재를 내린 가운데 우리은행이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특히 당국은 우리은행의 이상 외환거래는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최근 우리은행은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에 깊이 연루되지 않으면서 이미지 개선에 성공하는 분위기였으나 이번 징계로 다시금 내부통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우리은행에 외국환거래법 위반, 금융사고 예방대책 관련 내부통제기준 미준수를 이유로 제재를 결정했다. 3개 지점에 대해 업무일부정지 6개월, 과태로 1억7700만원, 과징금 3억900만원을 내렸다. 또 관련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면직·감봉 상당의 제재를 통보했다.

우리은행이 받은 징계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았다. 과태료·과징금 액수가 가장 많았고 영업정지 기간도 제일 길었다. 또 임직원 징계도 우리은행이 유일했다. 국민은행도 이상 외환거래 문제로 과태로 3600만원, 과징금 3억3000만원을 적용했다. 신한은행에는 업무 일부정지 2.6개월(BH지점), 과태료1200만원, 과징금 1억7400만원을 부과했다. 농협은행에는 업무 일부정지 2.6개월과 과징금 1876만원을, 하나은행에는 업무 일부정지(영업점) 2.6개월, 과징금 2690만원을 적용했다. 

지난 2022년 시중은행에서는 규모가 작은 신설법인에 거액의 송금이 이뤄지거나 은행의 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거래가 늘어나는 등 이상 외환거래가 발생했다. 이에 금감원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은행권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총 9조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실체가 의심되는 ‘유령회사’가 대규모 외화를 송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부 자금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와 연관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은행이 가장 무거운 제재를 받은 이유는 외환거래가 허위임을 알고서도 이뤄진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머지 은행들은 해당 외환거래의 진위를 검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절차 중 일부를 거래 업체의 편의를 봐준다는 이유로 이행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송금 업무 시 은행원이 한국은행총재에 신고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외환거래를 원하는 업체로부터 증빙서류를 확인하지 않았다. 해당 거래가 거짓인지 알면서 의도적으로 송금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 소재의 우리은행 지점을 맡은 전(前) 지점장 A씨는 2021년 10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개의 업체의 무역거래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송금 업무를 진행했다. 더구나 이 거래는 해당 업체의 가상자산 차익거래를 위한 것이었지만 A씨는 이를 돕기 위해 송금을 취급했다. A씨는 도움의 대가로 업체 관계자로부터 2300만원 상당의 금품도 받았다. 

또 A씨는 또 다른 한 업체가 10억원이 넘는 금액(약 1300만달러, 170억원)을 은행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송금하려는 불법행위를 허용해줬다. 이 역시도 거래가 거짓임을 인지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외환 업무를 진행했다. 이에 해당 지점에선 8개월 간 총 268건, 3억4200만달러(약 4천2백억원 상당)의 불법 송금거래가 발생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지점을 관리하는 지역 영업본부는 A씨의 범죄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것이다. A씨는 무등록 외국환업무 공동정범, 자본거래 미신고 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우리은행은 그간 부실한 내부통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대규모 원금손실을 불러온 일부 사모펀드를 부당한 과정을 통해 판매했으며, 2022년엔 7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한 직원이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횡령 액수로 따지면 은행권 최대 규모다. 그런데 최근 우리은행은 ELS 손실 사태에는 휘말리지 않으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상 외환송금 사태를 일으킨 핵심 금융사가 우리은행인 것으로 밝혀져 내부통제에 대한 우려는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022년 이상 외환거래 문제가 불거진 당시 우리은행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이미 여러 조치들을 마련하고 기자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안들을 설명하는 자리도 마련한 바 있다"라면서 "앞으로는 내부통제 관련한 이슈가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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