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제조사 밀다원 저가 양도 혐의 1심 선고
재판부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회피 전제 납득 안돼”
“2000억 직·간접적 손해, 저가 양도 경제적 이익 없다”
허 회장, 별다른 입장 표명 없어···둘째 아들 허희수도 법원에 나와 결과 지켜봐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하고자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양도주식 가액을 정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허 회장에게 배임의 고의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 부장판사)는 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들이 양도주식 가액을 결정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주식양도에 관여한 피고인들의 행위에서 배임의 고의가 인정된다 보기 어렵다”면서 “공소사실 범죄의 증명이 없어 피고인들에게 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를 선고한다”라고 밝혔다.

SPC그룹은 2008년 파리크라상, 샤니 등 계열사를 통해 밀가루 제조사 밀다원을 인수했다. SPC그룹은 밀다원의 밀가루를 SPC삼립이 구매해 계열사에 판매해 방식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꾀했다. 이후 2011년 12월 28일 SPC삼립이 계열사 보유 밀다원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2012년 1월 시행을 앞둔 개정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지분 구조 상 SPC삼립을 경유한 공급 경로가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부과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SPC삼립이 밀다원의 주식을 취득가나 직전 연도 평가액보다 현저히 낮은 255원으로 평가한 점이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검찰은 밀다원의 2009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와 설비 투자에 따라 2012년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매출을 감안해 ‘추정이익’을 반영한 평가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고 봤다. 검찰이 제시한 적정가격은 1595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샤니의 밀다원 인수 이후 매출 등이 상승한 것은 인정된다면서도, 이러한 사실만으로 곧바로 검찰의 주장대로 상증세법상 추정이익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평가 방법 결정에서도 부당한 지시 또는 개입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증여세 회피’라는 이 사건 전제 사실에 의문을 표했다. 상증세법의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도입 취지는 기업집단의 최대주주 등이 지배력을 이용해 편법적인 부의 이전이 가능했던 거래구조 및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허 회장은 자발적으로 이러한 지배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고 증여세 회피와 양도가액 책정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기존구조 유지는 편법적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라는 것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주식양도 당시 밀다원을 보유한 파리크라상과 샤니는 총수일가가 100% 소유한 기업이었고, 상대방인 삼립은 기타 소액주주가 20%에 달했다며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역설적으로 허 회장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허 회장은 본인과 두 아들에게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연 7억3000여만원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2000억원이 넘는 직·간접적 손해를 감수한 것이므로 주식을 저가에 매도할 경제적 동기가 없다는 판단이다.

주식 매도 과정에서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사회가 열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각 회사의 의사에 반해 거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배임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허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취재진과 만나 “수고하셨다”는 짧막한 인사를 건네고 법원을 나섰다. 허 회장의 둘째 아들 허희수 그룹 부사장도 이날 법원에 나와 선고 결과를 지켜봤다.

SPC그룹 관계자는 “오해와 억울함을 풀어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며 “국내는 물론 해외 글로벌 사업에서도 대한민국 대표 식품기업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바른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검찰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수사관에게 뇌물을 주고 수사 정보를 빼낸 혐의로 SPC 임원 백아무개씨의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 백만 원의 향응 등을 받고 SPC 측에 압수영장 청구사실이나 내부 검토보고서 등 각종 수사정보를 누설한 6급 검찰수사관 김아무개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씨는 현재 직위 해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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