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 판단
법원 “모든 범죄 혐의 증명되지 않아”
검찰 “판결문 검토 후 항소여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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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76·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69·11기)·박병대(67·12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에 적용된 47개 혐의 전부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검찰 기소 후 1810일, 약 4년 11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도 각각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구형량은 양 전 대법원장 징역 7년, 박 전 대법관 징역 5년, 고 전 대법관 징역 4년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기소됐다.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적용된 혐의만 47개에 달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추진 등으로 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대내외적으로 비판 세력을 탄압했으며 부당한 방법으로 조직을 보호했다고 의심했다.

가장 큰 쟁점은 직권남용죄의 인정 여부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을 가진 판사가 개별 재판에 개입하거나 각 재판부 판사에게 개입할 권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남용될 직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이날 재판부는 하급자들의 일부 직권남용죄가 인정될 수는 있으나,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해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검찰의 증거에 모두 부동의하는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심리가 진행됐다. 피고인이 검찰의 진술증거에 부동의 하는 경우 검찰은 입증을 위해 관련자들을 법정에 불러 신문해야 한다. 이같은 이유로 1심에서 소환된 증인만 211명에 달했다. 이밖에 재판부 전원 교체, 양 전 대법원장의 폐 절제술, 코로나19 등도 재판지연에 영향을 줬다.

2018년 6월 시작된 이 사건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고, 3차장검사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듬해 1월11일 전직 사법부 수장 최초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1월24일 구속됐다. 사법부 수장이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속 수감까지 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수사는 2019년 3월 5일 마무리됐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입장문을 내고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판결 직후 “당연한 판결이라고 본다. 이런 당연한 귀결을 명쾌하게 판단한 재판부에서 경의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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