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IATA 캠페인 동참했지만 비중은 오히려 하락
업계 “다양성·기업가치는 비례해 현상 개선될 것”

돗토리 미츠코 일본항공(JAL) 사장(왼쪽)과 조애나 개라티 제트블루 CEO. 최근 잇달아 항공사 수장으로 선임된 여성 리더들이다. / 사진=각 사
돗토리 미츠코 일본항공(JAL) 사장(왼쪽)과 조애나 개라티 제트블루 CEO. 최근 잇달아 항공사 수장으로 선임된 여성 리더들이다.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경력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인생의 큰 사건을 겪고 있는 여성 근로자들이 있다. 내가 사장으로 임명된 것이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 최대 대형항공사 일본항공(JAL)의 첫 여성 사장인 돗토리 미츠코가 지난 17일(현지시간)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연 후 꺼낸 말이다. 돗토리 사장은 1985년 객실승무원으로 입사해 사장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직장내 성평등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여성을 위한, 중요한 진전”(비즈니스 인사이더)이란 외부 평가를 이끌어냈다.

일본항공에 앞서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1위 저비용항공사(LCC) 제트블루도 창립 26주년을 맞은 올해 처음 여성 수장으로 조애나 개라티(Joanna Geraghty)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해외 항공업계에 여성 리더가 속속 등장하는 분위기다.

◇ 대한항공 여성 임원 비중 지난 4년간 5% 수준

한국 항공업계는 여성 수장은커녕 임원 임명 소식도 잠잠하다. 국내 항공업계 점유율 1위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최근 수년간 관리자급 여성 직원의 비중을 두자리수로 유지했지만 여성 임원 비중을 한자리수의 낮은 수준을 유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여성 임원 비중은 지난 4년간 5% 안팎 수준을 유지했다.

대한항공 상무 이상의 여성 임원 수는 2020년 5명에서 지난해 3분기말 기준 3명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여성 비중도 6.1%에서 3.7%로 하락했다. 이는 미국, 일본 등 선진 항공 시장의 주요 업체와 대비되는 수치다. 미국 델타항공의 여성 임원 비중은 지난 2022년말 기준 21%에 달했다. 최근 CEO직의 유리천장을 깬 일본항공도 2022 회계연도 말(2022년 3월말) 기준 16.7%를 기록했다.

대한항공의 남녀 임원 수와 여성 비중 추이.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대한항공의 남녀 임원 수와 여성 비중 추이.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대한항공은 2년여 전 공식 참여한 여성 임원 비중 25% 달성 캠페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2021년 대한항공이 가입한 항공사 동맹 스카이팀(SKYTEAM)의 모든 회원사들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캠페인(이니셔티브) ‘25by2025’에 참여하기로 선언했다. 대한항공은 국적 항공사 중 유일하게 해당 이니셔티브에 참가한 상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내년까지 이니셔티브 참가 시점보다 여성 주요 직위자(senior position) 수를 25% 늘리거나, 주요 직위자 중 여성 비율을 25%까지 높여야 한다.

◇ 대한항공, 목표 달성하려면 男 임원 17명 교체해야

IATA는 지난 2022년 4월 배포한 자료를 통해 25by2025의 경과로서 항공사 리더십 직위 여성의 인원 비중을 발표했다. 자료상 리더십 직위에는 최고경영책임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최고경영진과 인사부서 임원(HR director)의 인원 비중이 나열됐다.

대한항공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수치를 제시하고 있는 ‘차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IATA가 25by2025를 통해 여성 임원 비중 확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한항공이 25% 여성 임원 비중을 맞추려면 지난해 말 기준 임원 79명 중 최소 17명 이상 남성을 여성으로 교체해야 한다. 다만 대한항공은 국제기구인 IATA의 주도 아래 진행되는 이니셔티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비중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보잉 787-9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직원들이 보잉 787-9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대한항공

IATA는 여성 관리자급 책임자 비율을 10% 이상 늘린 기업의 가치가 6.6% 증가했다는 외부 분석 결과를 근거로 들어, 여성 임원 비중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더욱 넓은 영역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을 인재 풀(pool)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튀르키예 LCC인 페가수스항공의 여성 CEO 굴리즈 외츠튀르크는 “인구 절반인 여성에게 동등한 (경력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재 풀의 절반이 배제되는 것”이라며 “항공사는 다양성을 핵심가치로 인식하고 있고 사업적으로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 “여성 인재 발굴 안하면 인재풀 절반 잃는 것”

업계는 보수적인 국내 항공산업 문화, 여성 경력단절 등을 낮은 여성 임원 비중의 원인으로 꼽힌다. 구성원의 다양성 강화가 항공사 경쟁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업계 특성상 여성 직원, (임원 외) 관리자 비중이 높지만 결혼 후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모성보호제도 등을 통해 현실적 방안이 마련돼야 여성 전문 인력 양성에 도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내 각종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남녀 직원들. / 사진=유튜브 캡처
대한항공 내 각종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남녀 직원들. / 사진=유튜브 캡처

낮은 여성임원 비중을 개선하기 위해 각 항공사들이 개방적인 인사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예를 들어 델타항공은 ‘격차 해소(Close the gap) 전략’을 수립하고 성별,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인재를 발굴하는데 힘쓰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1년부터 국적 항공사 중 유일하게 25by2025 캠페인에 참여해 여성 인력, 관리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며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항공사들의 구성원 변화, 조직문화 개선이 물 흐르듯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민주 삼육대 항공관광외국어학부 교수는 “그간 현장직에 비교적 많이 종사해온 항공업계 여성들을 앞으로 더욱 다양한 부서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지로 먹고 사는 기업인 항공사는 여성 임원 비율 이슈의 확산을 기업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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