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침체기에 미분양 늘며 자체 개발사업 리스크 높아져
사업성 확보된 사업장 다수 올해 시공사 선정 예고···도급사업 경쟁만 치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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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건설사가 수년 전 자체개발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최근에는 도급사업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는 주요 건설사 CI.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수년 전 건설업계에 불던 자체개발 사업 확대 붐이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금리 부담과 부동산 시장 전반의 침체로 인해 미분양이 증가하며 개발사업에 대한 리스크도 커진 영향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영건설이 자체개발 사업 의존도를 높이면서 유동성 위기가 불어닥친 것을 이유로 무리한 개발사업 확장을 지양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디벨로퍼는 사업부지 매입부터 기획, 인허가, 개발, 시공, 분양까지 총괄한다. 업무를 총괄하는 만큼 공사비로 계약하는 단순도급에 비해 높은 마진을 올린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대형 건설사일수록 개발 업무를 함께할 관계사가 많아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용이하다. 이와 같은 장점이 부각되며 2020년 이후에만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을 비롯해 현대건설, GS건설, 롯데건설 등 대형사가 한국부동산개발협회(KODA)에 회원사로 대거 가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체개발 사업을 강조하는 건설사 사례는 찾기 드물다. 사업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경우만 부각되고 있다. 일례로 이스턴투자개발, 코람코자산운용, 신한자산신탁 등과 케이스퀘어그랜드강서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를 꾸린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강서구 이마트 가양점 부지 개발을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 건축심의회 심의를 거쳐 건축허가 신청 등의 인허가 절차를 거치게 된다.

당초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부지를 사들일 2021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오피스텔이 지어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오피스텔 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시행 주체는 지하5층~지상21층 규모의 지식산업센터를 짓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사업 추진계획이 변경되면서 교통영향평가 및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 절차도 다시 밟게 됐다. 공사는 올해 4월 착공해 2028년 준공 예정이었지만 인허가 일정이 지연됨에 따라 계획보다 1년가량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발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도 자연히 늘어난다.

특정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택사업, 오피스, 물류센터 등 다양한 자체개발 사업 비중 확대로 수익성 극대화를 노리던 건설사들은 전략수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DL이앤씨다. DL이앤씨는 2021년 디벨로퍼 중심의 토탈솔루션 사업자로 성장해 차원이 다른 수익성을 실현하겠다고 예고했다. 15% 수준인 주택사업 내 디벨로퍼 수주 비중을 2023년까지 30%로 끌어올린다는 구체적 계획도 덧붙였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성수동 초고층 주상복합 아크로서울포레스트는 DL이앤씨가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표적 자체개발 사업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암초에 부딪치면서 현재는 이렇다 할 수주나 개발사업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도급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탈피를 외쳤지만 되레 지금은 안정적인 도급사업에 집중하하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마진이 크지 않더라도 위험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재건축 규제완화 정책은 더욱 도급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힘을 싣게 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초고층으로 높아진 용적률과 기부채납, 급등한 시공비 등의 현실적 제약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사업성 확보가 가능한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부산에서 1군건설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는 촉진2-1구역 시공권 확보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시공권 경쟁에서 경쟁입찰 구도가 형성되는 사례가 좀처럼 드물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태영건설도 관급공사 중심으로 해오다 부동산 호황기에 자체 개발 사업장을 무리하게 늘리며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아니겠나”라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우수한 입지와 사업성을 갖춘 상급지 현장이 사업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대다수 건설사들도 시장 환경과 금리 부담 등으로 자체개발 사업보다는 안정적이고 상징성 있는 도급사업 확보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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