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찬 전 애경 대표 등 피고인 2명 상고···판결 불복 이어질 듯
옥시 피의자들과 공동 주의의무 위반, 과실-피해 인과관계 등 쟁점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왼쪽)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왼쪽)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해 피해를 일으킨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임원들이 2심 유죄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1심의 무죄 판결이 뒤집힌 데다 2심 재판부 역시 쟁점이 큰 사건이라고 언급해 대법원에서도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변호인단은 이날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안승훈 최문수 부장판사)에 상고장을 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한순종 전 SK케미칼 상무의 변호인단도 지난 12일 상고했다.

피고인들의 재판 불복은 예견된 일이었다. 원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고, 유죄를 선고한 2심 역시 ‘우리 재판부가 설시한 법리가 과거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고 언급하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피고인들을 법정구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가 주원료인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살균제의 제조·판매와 관련된 피고인들이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1994년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만들었다. ‘유공 가습기메이트’ 제품은 위 두 제품의 전신이다.

이들은 지난 2018년 질병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주성분인 옥시 제품을 사용한 피고인들과 ‘공동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로 그 과실이 ‘중첩적, 순차적으로 경합’해 피해를 일으켰다는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다.

PHMG·PGH에 비해 CMIT·MIT 성분은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아 2016년 첫 수사 때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이후 연구와 실험 결과가 쌓이면서 2019년에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021년 1심 재판부는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PHMG·PGH가 주원료인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업체 관계자들과 과실범의 공동정범인지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생략됐다.

그러나 2심은 두 전제 조건이 모두 인정된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피고인들이 과거 유죄가 확정된 옥시 가습기살균제 피고인들과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는지 여부다.

과실범의 공동정범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는 복수의 제조업자가 동일한 유형의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소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예정돼 있으므로 각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개발·제조·판매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가 ‘공동의 주의의무와 인식’ 아래 업무상 과실로 결함 있는 가습기살균제를 각각 제조·매매했다고 할 수 있다”면서 “그 결함으로 두 종류 이상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면, 가습기살균제들의 제조·판매에 관해 업무상 과실이 있는 사람들 간에는 피해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라고 밝혔다.

복수의 여러 종류의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건강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 각 제품의 결과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를 일일이 가려내 규명하는 것은 성질상 불가능하며, 그 위험에 상응해 사전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행위자들에게 공동의 주의의무를 부과시키는 것이 형사정책적 목적에도 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2심은 공동정범들의 업무상 과실과 피해자들의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 또한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공이 제품 출시 전 자사 생물공학연구실로부터 ‘재고의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받고, 이 의견에 대해 제품 출시 한 달 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마우스를 이용한 간이 흡입노출시험을 의뢰하고서도 그 결과를 받기 전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한 점 ▲제품 출시 후 서울대로부터 ‘실험이 더 필요하다’는 결과를 보고받고도 판매 중지나 회수 조치를 하지 않은 점 ▲그것이 계속 이어져 이 사건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에서 각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는 결과에까지 이르게 된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그러한 행위가 제조·판매업자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면서 “‘제품 용기 라벨에 ’인체에 해가 없는 제품‘이라고 표기됐는데, 그 허위 표시행위에 관련된 일부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은 그 책임이 더더욱 무겁다”라고도 했다.

특히 재판부는 CMIT·MIT 성분이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1심 판단에 대해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인 동물실험 결과에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둔 것이다”고 꼬집었다.

동물실험이 가지는 본질적·내재적 한계로 인해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건강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며,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 피해자 보호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재판부가 설시한 법리는 과거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면서 “과거업무상과실로 인한 상해 등이 문제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요구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발생을 피할 수 없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인과관계의 상당성을 부정한 사례들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위 사안에 관한 법리를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이뤄지는 경쟁시장이자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유통시장에서의 제조·판매업자에게 요구되는 안정성에 관해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안까지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 “나아가 그러한 법리를 그대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에 기재된 주의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더라도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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