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회장, 비상장 계열사 주식 ‘저가 양도’ 배임 혐의 기소
檢 징역 5년 구형, 허 회장은 무죄 주장···2월2일 선고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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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검찰이 구형까지 끝낸 사건의 선고기일 지정을 늦춰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피고인과 검찰 직원과의 부당한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추가 증거자료 제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요청이다.

재판부는 특정인의 진술에 의해 유무죄가 바뀔 사건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하고, 선고기일을 넉넉히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들과 검찰 내부 직원과의 불미스러운 혐의와 관련해 수사 중이고 압수수색도 진행됐다”면서 “본 건에 대한 추가증거가 제출될 수 있고, 관련성이 높아 보이므로 선고기일을 넓게 지정해달라”라고 말했다. 검찰은 “(뇌물 의혹 사건) 수사가 완료되면 양형 자료가 (추가로) 제출될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검찰이 언급한 불미스러운 혐의 수사는 이 사건 공동피고인인 황재복 SPC 대표가 검찰 수사관 A씨에게 뇌물을 주고 압수수색 시점 등 수사 기밀을 빼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황 대표에 대해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SPC그룹 자회사인 PB파트너즈의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조 탈퇴 강요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황 대표의 뇌물 공여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혹이나 수사가 있더라도 이 사건은 객관적 상황과 (양도된 주식의) 적정가액을 판단하는 사안으로 직접적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의 진술에 의해 유무죄가 바뀔 사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과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SPC 대표이사 등 3인은 2012년 12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취득가(2008년 3038원)나 직전 연도 평가액(1180원)보다 낮은 255원에 삼립에 판 혐의로 2022년 12월 기소됐다.

2012년 상증세법 신설에 따른 일감몰아주기 과세요건을 피하려고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아 회사(파리크라상, 샤니)에 손해를 입히고 삼립에 재산상 이익을 줬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최후논고에서 “피고인들은 경영을 책임지는 고위 임원으로서 임무를 위배해 밀다원 주식을 과거 평가가액이나 객관적 교환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가로 매도해 파리크라상 등의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면서 “삼립에 재산상 이익을 주고 총수일가의 이득만 고려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허 회장은 다수 법인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책임을 갖고 있지만 주식을 임의로 처분하면서 이익을 사유화했다”면서 “피고인들은 피해자 회사의 재산을 적정히 관리할 의무를 위반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허 회장에게 징역 5년을, 조 총괄사장과 황 대표이사에게는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허영인 등 피고인들 무죄 주장···“배임행위 불성립, 고의도 부존재”

반면 허 회장 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SPC는 비상장사(밀다원) 주식을 저가로 양도해 상장사를 지원한 것이나, 허 회장을 포함한 대주주들도 손해를 입는 결과로 귀결된다는 지적이다.

변호인은 “배임의 고의는 피고인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대주주인 피고인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 배임의 고의가 인정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외부전문기관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주식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했다”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주식매각가격을 결정한 피고인들에게 배임의 고의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사회결의가 없었다는 절차적 하자에 대해선 “이 사건 당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내부 규정이 부존재 했다”면서 “형식적·물리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았더라도, 컨설팅 및 주식가치평가 용역 결과 등을 시종일관 보고받고 검토한 파리크라상 및 샤니의 각 이사회 구성원 전원의 승인이 있었으므로 이를 문제 삼을 순 없다”라고 해명했다.

SPC 측은 2013년 세무조사에 대비해 사후적으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했으나, 이사회 개최 여부와 배임죄 성립 여부는 무관하다는 게 허 회장 측 주장이다. 변호인은 허 회장의 배우자가 관련된 과거 ‘상표권 배임’ 사건에서도 이사회 개최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무죄가 확정됐다고 강조했다.

2020년 9월 수사가 시작된 후 2년여가 지나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도 “불의의 사고 발생 직후에 기소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그 경위가 정당한 절차인지 다소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소 직전인 2022년 10월 SPC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20대 근로자 사망 사고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건 기록이나 공판 과정을 보면 검찰의 기소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면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명백하므로 무죄를 선고해 달라”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기소 자체가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빵을 만드는 것 외에 경영과 관련해서는 전문경영인들에게 모두 맡기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오래전 밀다원 주식의 양도가 새삼 문제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니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희에 대한 오해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면서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여기고 앞으로 더욱더 국민에게 믿음과 사랑을 받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허 회장에 대한 선고 공판은 2월 2일 열린다.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 등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샤니 등을 제재한 것에 반발해 회사가 제기한 행정소송 결론은 이달 31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가 총수 일가 개입 아래 2011년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7년간 그룹 내 부당지원을 통해 삼립에 총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제공했다며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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