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씨, 대법원서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확정···“사적 제재”
구씨 “정치권, 지키지 못할 공약 남발···제도는 늘 개선 안 돼”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한 구본창씨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된 4일 오전 서울 대법원에서 구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양육비 선(先)지급제는 문재인·윤석열정부의 선거 공약이었지만 모두 파기됐다.”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한 구본창(61)씨는 4일 대법원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을 확정받자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구씨는 ‘국내 양육비 미지급 문제해결에 정치권의 책임은 없다고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공약했으나 파기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같은 선거 공약을 했지만 파기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한부모 가정을 겨냥해 (정치권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한 것이다”라면서 “공약을 파기하면서도 최소한의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절차도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 가정은 80.7%에 달한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국내 양육비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가 공약한 사안이지만 ‘회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급제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 회수율이 17%에 불과함에도 아동 복지를 이유로 제도를 지속하고 있다. 독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5명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내 최하위권으로 떨어진 우리나라의 약 두 배(0.78명)에 달한다.

구씨는 양육비 피해자인 한부모 가정이 정치권을 향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도 설명했다. 그는 “홀로 생계를 담당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피해자들은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작고 힘없는 집단이다. 정치권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배경이다”라면서 “양육비 문제는 결국 아이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것임에도 제도가 늘 개선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선 “앞으로 양육비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 소액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이를 각오하고 아이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냐는 양육자들의 선택에 맡겨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선고유예란 유죄로 판결하되 형의 선고를 보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한다. 통상 가벼운 유죄가 인정된 피고인에게 자숙의 시간을 가지라는 차원에서 내려지는 판결이다.

구씨는 2018년 9∼10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사람 5명의 사진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 5명이 검찰에 구씨를 직접 고소해 수사가 시작됐으며 실제로 구씨가 공개한 대상자는 더 많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고 배심원 7명도 전부 무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국내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면서도 법적 절차에 따르지 않고 개인이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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