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민간·대기업 중심’정책이 우려스런 이유

[시사저널e=김동하 한성대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교수] 희망 찬 새해가 밝았지만, 주변의 청년 창업가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개발이나 사업진행 보다도 '돈' 문제, 다시 말하면 자금을 조달할 데가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창업자들이 부쩍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2년 3분기까지 10조2126억원을 넘었던 벤처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7조6874억원으로 25% 가량 줄었다. 하지만 문제는 감소율 자체가 아니라, 신규 투자가 크게 움츠러들었다는 데 있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블로그

많은 투자자들이 기존에 투자한 스타트업을 살리기 위한 '후속투자'에 치중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기존 투자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자를 받는 '디밸류' 투자를 감내해야 했다.

새로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투자보다는, 이미 투자한 기업이 무너질까봐 이뤄진 투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한 해 동안 투자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의 숫자는 22년 322개에서 지난해는 100개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트업 혹한기에 찬바람을 불어넣은 데는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R&D예산 삭감의 충격파가 대학과 공공기관을 덮쳤다면,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모태펀드 출자자금도 얼어붙었다. 마중물을 부어야 할 많은 모태펀드 운용사들이 신규투자에 있어서는 '개점휴업'을 하는 동안, 목마른 스타트업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우물을 퍼 올릴 수 없었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블로그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블로그

물론 미국, 유럽, 이스라엘보다는 벤처투자 감소율이 낮은 점, 새해 융자부문에서 중소벤처기업창업 및 진흥기금 예산이 소폭 늘어난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스타트업, 벤처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정부 의존도가 높다. 순수 민간중심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이스라엘보다도 한국은 정부 중심의 창업 지원 생태계와 모태펀드를 통한 투자 생태계가 촘촘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서 '시장'에서 '돈'을 벌어 성장한 곳은 어디가 있을까? 단언컨대. '투자'나 '정부지원'이 없이 한국 시장에서 자생한 스타트업 성공신화는? 없다.

정부와 여당이 표방하고 있는 '민간 중심', '대기업 중심' ,'시장 중심'의 벤처 정책을 접하면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와 공공이 움츠러드는 동안 중기벤처나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되는 새로운 상황을, 한국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청년 창업가들의 인구 집단이 크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구제금융'과 같은 극약처방이 필요한 스타트업 생태계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부동산PF나 자영업자 우려에 비하면, 관심과 우려의 양과 질 모두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수십 개의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모태펀드나 해외펀드의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야심찬 스타트업들이 타인의 투자금으로 적자를 무릅쓰고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상에서나 존재하는 ‘유니콘’ 같은 기업, 즉 초기 스타트업이 '10억 달러'라는 엄청난 가치평가를 받은 건, 모두 '투자자'들이 매긴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 투자자들이 평가하던 가치의 잣대는 그저 '시장상황'을 이유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22년 20개를 넘었던 유니콘 기업의 숫자도 지난해 3개 정도에 머물렀다.

선배들의 '대박신화'와 '성공신화'를 보며 달려 온 많은 후배 창업자들. 이들에게도 지원받고 투자받을 '기회' 만큼은 비슷하게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새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절실한 건, 유니콘이 아니라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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