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 기존 성장전략 바꿀 것 강조
우리, '성과' 외쳐···NH, 디지털·ESG 방점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 사진=각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 회장들이 갑진년(甲辰年) 신년사를 통해 올해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그간 추구했던 성장 전략에 대해 반성하면서 올해 ‘고객신뢰’와 ‘상생’에 방점을 찍었다. 은행권을 향한 '이자장사' 비판과 잇달아 발생한 금융사고를 의식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반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유일하게 '가시적 성과'를 강조했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디지털화 등 미래 성장에 더 무게를 뒀다. 

◇‘반성문’ 쓴 양종희·진옥동·함영주···‘상생·고객’에 방점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KB고객’의 범주에 ‘사회’를 포함해, KB-고객-사회의 ‘공동 상생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 회장의 이번 선언은 기존 성장전략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고 부의 양극화 심화되는 상황에서 KB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경쟁과 생존’의 패러다임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상생과 공존’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KB의 고객’을 ‘국민, 그리고 사회 전체’로 그 범위를 확대해 재정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을 강화하고, 금융투자상품의 선정과 판매에 엄격한 원칙을 확립해 금융사고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를 차단할 것을 강조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그간 금융지주들이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던 방식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규모와 성과에만 몰두한다면 '고객'이라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라면서 “고객중심만이 일류(一流) 신한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를 통해 고객 만족을 극대화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특히 그는 ‘선(業)의 윤리’를 강조했다. 진 회장은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건전한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심과 공감을 이야기했다”라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어우러진 금융 생태계에서 주위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자세는 필수다”라고 설명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우리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면서 “이에 하나금융그룹은 잠시 멈춰서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손님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함 회장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협업’을 강조했다. 그는 뿌리가 깊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는 ‘레드우드’를 빗대어 협업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레드우드)는 구조적으로 취약하지만, 옆으로 뻗어 주변 나무의 뿌리와 강하게 얽혀 서로를 지탱한다”라면서 “우리에게도 협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각 사의 한정된 자원으로 강력한 경쟁자들과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임종룡 “올해 명확한 성과 내야”···이석준 “AI에 사활”

반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선택과 집중의 성장 전략과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선도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우리 그룹이 지난해 동안 선도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라면서 “올해에는 고객과 시장이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체감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성과들을 보여줘야 할 때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구체적으로 기업금융·글로벌 사업 강화, 비은행 인수합병(M&A) 등을 언급했다. 기존에 금융지주 회장들이 신년사에서 흔히 강조했던 부분이다. 

임 회장의 선언은 지난해 우리금융의 실적 부진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의 작년 3분기 누적 순익은 작년 동기 대비 8.3% 줄었다. 우리금융은 경쟁사 대비 규모가 작기에 더 빨리 성장해야 하지만 오히려 실적이 감소한 것이다. 더구나 우리금융은 최근 문제가 된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려 사태’의 영향이 적은 점도 ‘성장’을 외칠 수 있는 배경이 됐단 관측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ELS 상품을 가장 적게 판매했다.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도 기존 전략에 대한 반성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향후 성장에 상대적으로 더 중점을 뒀다. 이 회장은 “선제적·시스템적·촘촘한 그물망식 리스크 관리가 요구된다”라면서 “기존 예측 범위를 넘어선 다양한 잠재위험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어떠한 위기가 오더라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리스크관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성장 전략으로는 인공지능(AI)과 ESG 경영을 꼽았다. 이 회장은 “모든 산업에 있어서 AI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라면서 “농협금융도 올해부터 사업과 서비스 전 영역에서 챗 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실장(實裝·실제로 사용하도록 배치)하는 준비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농협금융은 ESG를 경영과 사업에 실질적으로 접목하는 원년으로 생각하고, 진심을 가지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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