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직책 아닌 ‘사용자 이익 대표하는지’ 등 실질 따져
청구인 2심서 승소했지만···대법 “퇴직해 소 이익 없다”
재판지연이 소송 결과에 영향···청구인 “매우 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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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대자동차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여부를 놓고 벌어진 소송이 대법원에서 ‘각하’됐다.

2심은 노조 가입 자격이 일정한 직급이나 직책 등에 의해 일률적으로 결정돼선 안 된다며 청구인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청구인이 퇴직해 노조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며 본안판단 없이 직권으로 소송을 종결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현대차 차장급 직원 출신인 현승건씨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상대로 낸 ‘조합원 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을 파기자판으로 각하했다.

상고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경우 그 소송기록과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해 판결하기 충분하다고 인정한 때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파기환송) 직권으로 판결(파기자판)할 수 있다.

조합원 지위 확인을 구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확인의 이익’이 없다며 직권으로 사건을 각하했다. 현씨가 상고심 중인 2021년 12월 정년퇴직해 더 이상 조합원 자격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고, 현대자지부의 조합규정을 들어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이란 당사자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이를 제거하는 데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일 때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기록에 의하면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의 취업규칙은 정년퇴직일을 ‘만 60세가 되는 해의 연말 일’로 정했으며, 피고의 조합규약은 퇴직자는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다고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며 “원고는 상고심 계속 중인 2021년 12월 정년퇴직해 더 이상 피고의 조합원 자격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으므로, 피고의 조합규약을 들어 피고의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고의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게 됐고, 이 점에서 본안에 관해 판단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며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직권으로 원심을 파기하되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므로 민소소송법 제437조에 따라 자판한다”고 판시했다.

우리 노조법은 노동조합의 설립 및 그 존속에 있어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의 가입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이에 해당하는지는 일정한 직급이나 직책 등에 의해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질에 있어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이해충돌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 소송 역시 원고 승소로 확정됐을 경우 현대차 과장급 이상 직원 1만7000여명의 노조 가입 길이 열리게 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였던 사건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본안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으면서 현대차 간부사원의 노조가입 허용 여부에 대한 법률적 해석은 미결로 남게 됐다.

현씨가 이 소송을 처음 제기한 시점은 2018년 1월이다. 2019년 7월 2심에서 승소하고, 2020년 9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다. 현씨는 2020년 12월 퇴직했다. 외관상 재판지연이 이 사건 결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현씨는 시사저널e와의 통화에서 “매우 허탈하고 유감이다”면서도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위법무효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등 회사를 상대로 정당한 법률상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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