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기업결합 심사 난관에 합병 해 넘겨···“내년 2월 잠정 결론”
EU 승인 후에도 미국·일본 남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올해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당초 업계에선 올해 말에는 합병 과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주요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특히 유럽연합(EU) 심사 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면서 일정이 늦어졌으며, 미국, 일본 등도 EU 심사 결과 발표 이후에나 승인 여부를 정할 것으로 예상돼, 내년 상반기는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 3년 넘게 합병 표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은 지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 인수에서 손을 뗀 이후 산업은행은 새 인수자로 대한항공을 점찍었다.

산은 제안에 대한항공이 합의하며 양사 합병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항공사 1, 2위가 합병하게 되면서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항공사(메가캐리어) 탄생이 예고됐다.

문제는 독점 우려였다. 국내 여객 수송의 절반 수준을 차지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하게 될 경우 독과점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유럽과 미주 등 장거리 노선은 두 항공사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사 합병에 따라 계열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까지 합쳐지기 때문에 독점 우려가 더 컸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 합병을 승인하며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공정위는 양사 합병 시 26개 국제선, 8개 국내선 대상으로 국내공항 슬롯을 반납할 것을 지시했다. 또 11개 운수권도 신규 항공사가 진입할 경우 반납을 의무화했다.

양사 통합 관련 공정위 조치 사항.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양사 통합 관련 공정위 조치 사항.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공정위의 까다로운 조건에 다른 경쟁당국 심사 장벽도 높아졌다. 이에 대한항공은 해외 기업결합심사 대응을 위해 지난해 5개팀 100여명으로 구성된 국가별 전담 전문가 그룹을 운영, 맞춤형 전략을 펼쳤다.

글로벌 로펌사와 로컬 로펌사, 경재분석업체, 국가별 전문 자문사 등과 계약해 각국 경쟁 당국 요구에 적극 대응했다.

터키, 태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의 경우 양사 기업결합을 별다른 조건 없이 승인했지만 영국, 중국은 조건부로 승인했다.

영국은 올해 양 사 합병을 승인하며 영국 히스로공항 17개 슬롯 중 아시아나가 보유한 7개 슬롯을 반납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반납한 슬롯은 영국 버진애틀랜틱으로 넘어갔다. 또한 버진애틀랜틱은 대한항공이 창립멤버로 있는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에 합류했다.

중국도 베이징, 칭다오 등 9개 노선과 49개 슬롯을 반납하며 양사 합병을 승인했다.

◇ 내년 2월 EU 심사 결과에 따라 합병 갈림길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가 남은 곳은 EU, 미국, 일본 등 3개국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EU다. 당초 업계에선 기업결합에 엄격한 EU가 승인 과정이 까다로울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예상보다 높은 문턱에 시간이 지연됐다.

EU 집행위는 중간 심사보고서를 통해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바르셀로나 4개 노선에서 여객·화물 노선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 및 4개 도시의 슬롯 이전 방안을 포함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했다. 이후 EU 집행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 2월 14일 전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를 잠정 결론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디디에 레인더스 EU 집행위원도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한항공 시정조치안에 대해 “일부 제안에서 매우 좋은 진전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EU가 독점을 우려했던 주요 도시 여객 노선 이전과 화물사업 매각까지 결정된 만큼 최종적으로 EU가 승인할 가능성은 높아진 상태다.

EU가 승인하게 될 경우 기업결합 심사가 남은 곳은 미국과 일본 뿐이다. 일본의 경우 LCC를 비롯해 외항사들도 많이 취항하고 있는 만큼 독점 우려가 없어 승인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EU가 승인할 경우 마찬가지로 합병을 허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일각에선 조건부 승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이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를 맺고 있는 델타항공의 한-미 노선 강화를 우려해 양사 통합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어서다. 또한 유나이티드항공은 항공 동맹체 ‘스타얼라이언스’ 주축 멤버인데, 같은 동맹체 소속인 아시아나가 합병으로 이탈할 경우 피해가 클 수 있다.

다만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이 합병에 대한 의지가 큰 만큼, 경쟁당국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서 합병 성사 쪽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조원태 회장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 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양사 합병에 100% 올인하고 있다. 합병을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며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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