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원대 중반대 가격 협상 마무리
저가 중국산 유입에 국산 후판 가격 경쟁력 떨어져
철강업계, 해상풍력 시장 공략···프리미엄 제품 판매 비중↑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 사진=포스코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철강사와 조선사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마무리됐다. 중국산 저가 후판의 유입이 크게 늘어난 영향 등으로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을 소폭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조선업계는 원가 절감이란 호재를 맞게 됐지만, 철강업계는 원자재 가격 및 전기료 인상과 더불어 매출까지 줄어들 위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는 조선용 후판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상풍력용 후판 등 수익성이 높은 제품 생산을 늘리겠단 계획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올해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기존 톤(t)당 100만원 선에서 90만원 중반대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양측은 6개월이 넘도록 접점을 찾지 못하다 올해가 넘어가기 직전 협상을 마무리했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 협상도 12월에 마무리되는 등 양측은 팽팽한 가격 줄다리기를 이어오고 있다.

후판은 선박 건조시 사용하는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이다. 조선사 입장에선 선박 제조 원가의 20%를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하락해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철강업계는 후판 가격 하락 시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매년 각각 550만t, 260만t 생산하는 후판의 절반 이상을 조선용으로 판매한다. 조선소 납품 비중을 50%로 가정할 시 후판가가 t당 1만원만 싸져도 양사는 각각 275억원, 130억원 가량 손해를 보게 된다. 올 하반기 후판가가 5만원가량 떨어지면서 포스코는 천억원 이상 매출액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중국산 저가 후판 수입이 급증하면서 국내 철강사도 가격을 낮추는 선택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 중국산 후판은 총 102만7000t이 수입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5% 증가한 규모다. 현재 중국산 후판 가격은 t당 80만원대로 파악되고 있다. ‘엔저 현상’에 따라 일본산 후판도 가격 경쟁력을 갖춰 국내산 후판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가격 인상을 외치기 어려운 환경에서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후판 가격 인하 폭은 최소화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과 전기료 인상 등 영향으로 업황이 좋지 않지만 수익성은 크게 악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후판 생산량 조정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철강업계는 조선용 후판 출하 비율을 줄이고 고부가 후판 비율을 늘리는 방안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체 후판량 55% 까지를 조선향으로 공급했으나, 올해나 향후에는 그 비중을 낮춰 45% 미만대로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후판은 중국산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자 업계가 대응에 나선 것이다. 

공략하는 분야는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 시장 성장에 따라 하부 구조물에 쓰이는 후판과 강관 비중이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또한 해상풍력업계는 철강업계 대비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는 조선사보다 후판가를 더 높게 쳐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조선용 후판 생산 비중을 줄인 만큼 해상풍력 등 에너지용 철강재 판매 비중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포스코는 풍력과 태양광 소재용 제품 판매를 점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동국제강 역시 해상플랜트 등에 쓰이는 후판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초고장력 1.0GPa급 저탄소 전기로 판재 시제품.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초고장력 1.0GPa급 저탄소 전기로 판재 시제품. / 사진=현대제철

철강업계는 해상풍력 시장 외에도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 비율을 늘리고 원가 절감 등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지는 추세인 만큼 국내 철강사들은 친환경 철강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속속 시장에 내놓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29일 총 1조원의 투자금이 들어간 광양제철소 전기차 소재 전기강판(하이퍼 NO) 공장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번 준공으로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서 연간 15만t의 하이퍼 NO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글로벌 하이퍼 NO 100만t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말 2단계 준공을 완료하면 생산능력은 30만t까지 늘어난다. 이는 전기차 약 400만대에 필요한 구동모터 코어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현대제철은 기존 초고장력강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성형성을 향상시킨 ‘3세대 강판’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오는 2025년 2분기 상업생산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는 만큼 성형성을 극대화한 ‘3세대 강판’의 주문량이 급증할 것으로 현대제철은 보고 있다. 

저탄소 제품 생산능력도 크게 확대한다. 현대제철은 2030년까지 당진제철소 전기로 투자를 통해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 생산체체 전환을 추진하고 연간 500만t의 저탄소제품 공급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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