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다음 달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발표
신규 주택 공급 속도 기대감
“공사비 상승 등 추가 분담금이 가장 큰 걸림돌”

윤석열 정부가 이달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양도소득세 중과세 개선안도 함께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윤석열 정부는 다음 달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예고한 가운데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안전진단 등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를 예고한 가운데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양새다. 초기 정비사업 시간을 줄여 주택공급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반면 사업성 개선 정책이 동반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7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와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장관 취임식에서 “시장원리에 기초한 주택정책을 통해 주택시장 안정과 희망의 주거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며 “가구 형태·소득 수준에 맞춰 다양한 주거 옵션이 제공될 수 있도록 재건축·재개발 규제와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다양한 정비사업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1일 서울 중랑구 중화2동 모아타운 현장을 찾아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 절차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전날(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재개발과 재건축 등 집합적 재산권 행사에 있어 주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도록 노력했다”며 “(정비사업에) 선택의 자유가 지배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지도록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고 재차 관련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국토부는 안전진단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정비사업 절차 후순위로 미루거나 아예 생략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후 추진위나 조합을 설립하게 돼 있다. 순서를 바꿔 사업 주체를 먼저 설립하게 해주면 정비사업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아울러 주택 재개발 진행을 위한 주민 동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자금 조달이 어려워 속도를 내지 못한 재개발구역은 정책금융기관이 신용 보증을 제공해 비용을 낮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업계에선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사업성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이미 안전진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지난 1월 안전진단 평가 항목인 비중을 50%에서 30%로 낮췄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 160개 넘는 단지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하지만 높아진 공사비로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시공사를 선정한 서울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3.3㎡당 공사비가 107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재건축 공사비는 3~4년 전만 해도 3.3㎡당 50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700만~800만원대가 일반적이다.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선 조합원들이 추가 공사비를 얼마까지 낼 수 있느냐가 사업을 가를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노원구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던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조합원들이 전용 84㎡의 경우 6억~7억원대의 분담금을 내게 되자 시공사 선정을 해지하는 등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현장은 공사비 갈등으로 공적률 22%에서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 정부까지 재건축은 인허가가 관건이었으나 지금은 조합원들의 자금 여력이 사업 추진의 중요한 요인이다”며 “추가 분담금을 더 낼 여력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사업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높은 용적률도 걸림돌로 꼽힌다. 부동산 거래 플랫폼 다윈중개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30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 635곳 (41만2195가구) 중 326곳(51.3%·24만82가구)의 용적률이 200% 이상이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용적률이 180% 이하여야 사업성이 확보된다고 판단한다. 용적률 180% 초과 단지는 401곳(63.1%)으로 집계됐다. 재건축의 경우 용적률이 높을수록 일반분양 가구 수가 적어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금리와 높은 공사비로 인해 정비사업이 주춤하다는 점에서 안전진단 면제가 즉각적인 공급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용적률이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사업성 높일 수 있는 규제 완화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안전진단을 건너뛰고 재건축을 하는 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올 초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 정책을 발표했지만 주택법 개정이 무산됐다”며 “도정법 개정안도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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