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설립한 홍콩계 펀드···2020년 환매중단에 자금회수 난항
올해 손실반영 여부 놓고 감사 맡은 회계법인과 갈등 우려도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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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지난 2020년 환매중단된 젠투펀드에 투자했던 국내 상장사들이 연말 회계 결산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젠투펀드 최대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이 사적화해를 통해 올해 안에 사태를 마무리하겠다고 나서면서 투자손실 및 기존 수령한 선지급금에 대한 회계처리를 더이상 미루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상장사로서는 명확한 원칙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손실분을 결산 실적에 반영하자니 부담이다. 반대로 투자손실을 실적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실적 부풀리기가 되어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젠투펀드 환매중단 3년···실적반영 압박에 ‘골머리’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분기보고서를 통해 젠투펀드 투자에 대한 내역을 공시한 상장사는 한화, 한화생명, 한화투자증권,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움증권,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에스티, 스튜디오드래곤, 로보로보, 시티케이, 미창석유공업, 서울반도체 등이다.

젠투펀드는 한국인 신기영 대표가 홍콩에 설립한 운용사인 젠투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채권형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 및 이를 신탁상품으로 재가공한 상품을 말한다. 대표 펀드로 KS아시아 앱솔루트 리턴 펀드, KS코리아 크레딧 펀드 등이 있다.

젠투파트너스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운용 중인 펀드에 대해 환매중단을 결정했고 이후 환매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국내 젠투펀드 판매금액은 총 1조808억원이었는데 환매중단 금액은 1조125억원에 달한다.

젠투펀드 판매 증권사 가운데 신한금융투자는 4200억원으로 금액이 가장 많았다. 삼성증권(1451억원), 한국투자증권(17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3개 증권사가 판매한 총 5830억원은 전액 환매중단됐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902억원, 429억원 등 총 1331억원을 판매했는데 우리은행 347억원, 하나은행 301억원 등 648억원이 환매중단됐다.

이외 키움증권과 삼성증권은 자기자본으로 각각 3105억원, 542억원씩 총 3647억원을 투자했다. 키움증권의 경우 특정 파생결합증권(DLS)를 발행해 투자자들을 모았는데 DLS에는 문제가 없어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지급했지만 젠투파트너스 환매중단으로 손실분을 일부 떠안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사적화해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판매금액 전액을 보상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2021년 선지급금 형태로 40%를 지급했고 삼성증권도 올해 3월 선지급금을 내줬다.

그동안 신한투자증권은 소송을 통해 펀드 강제청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올해 젠투파트너스의 펀드청산 중지 가처분 신청을 현지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회수가 어려워졌다. 이에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8월 이사회를 열고 환매가 중단된 젠투펀드와 라임펀드에 대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비율산정 기준을 적용해 사적 화해 방식으로 배상하겠다고 결정했다.

신한투자증권이 젠투펀드 사태를 올해 안에 종결짓기로 하면서 젠투펀드에 투자했던 상장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연말 결산에 젠투펀드 투자손실을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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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한 원칙 없어···감사인과 충돌 우려도

젠투펀드 투자자는 판매사로부터 이미 받았던 선지급금보다 판매사의 사적화해 보상금액이 많다면 선지급금을 제외한 추가금액만 받게 된다. 반대로 선지급금보다 사적화해 보상금액이 적다면 이를 토해내야 한다.

사적화해로 제시한 금액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상장사로서는 주주들의 입장을 고려해 한국투자증권처럼 100% 보상안을 요구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소송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높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고 명확한 회계처리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상장사로서는 투자금 전액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투자손실을 결산 회계에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젠투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상장사들은 손실분 및 선지급금에 대해 명확한 원칙 없이 독자적으로 회계처리를 해왔다.

올해 3분기 분기보고서를 종합하면 로보로보는 젠투펀드 투자금 10억8800만원을 전액 평가손실로 이미 실적에 반영했고 선지급금은 기타유동부채로 인식했다.

젠투펀드에 200만 달러를 투자한 서울반도체는 선지급금으로 80만달러를 받았는데 이를 선수금으로 처리했다. 선수금과 펀드취득금액과 차액에 대해서는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평가손실로 계상했다.

씨티케이의 경우 젠투펀드에 4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선지급금으로 180만 달러를 받았다. 씨티케이는 펀드 평가손실 8억8673만원을 인식했고 선지급금은 기타부채로 계상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225억원을 투자했고 판매사로부터 선지급금으로 90억800만원을 수령했다. 동아에스티는 11억2500만원을 투자했고 선지급금으로 4억5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선지급금을 기타금융부채로 분류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경우 젠투펀드 투자금 64억8900만원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연결실체의 재무상태와 재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공시한 상태다.

다우데이타, 다우기술, 키움증권은 젠투펀드 환매중단 금액에 대해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평가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각사마다 회계처리 방향이 다르기에 연말 결산에서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회사간 의견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사가 투자금액을 손실로 잡아놓으면 문제가 없지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손상처리 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당기순이익이 부풀려질 수 있다”며 “이익이 과대평가되면 주주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회계법인에서 의견거절이나 한정 의견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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