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모펀드 사태 이어 ‘CEO 리스크’ 계속될 전망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증권사의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 ‘돌려막기’ 관련 제재 절차가 이르면 다음 달 시작될 전망이다.

일부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이에 관여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받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9개 증권사의 랩·신탁 업무실태를 집중 검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르면 다음 달 제재심의위원회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각 증권사에 의견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랩·신탁은 증권사가 투자자와 1 대 1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다수의 고객 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를 고려한 단독 운용이 가능하다는 특징 때문에 법인 고객의 단기 자금 운용 수단으로 선호돼왔다. 실적배당 상품으로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그동안 증권사들은 수익률 경쟁을 벌이면서 원금보장형처럼 판매해 왔다.

앞서 금감원 검사에 따르면 9개 증권사 운용역은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 계좌 간 손익을 이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손실 전가 금액은 증권사별로 수백억∼수천억 원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합산하면 조단위 규모에 달한다. 

증권사들이 우려하는 점은 CEO 제재다. 일부 증권사들은 증권사 고유자산을 활용해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했다. 랩·신탁 만기 시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증권사들은 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맞춘 것이다.

이 과정에서 CEO 등 경영진이 감독을 소홀히 했거나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관여 수준에 따라 일부 CEO들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징계를 받는 CEO도 나올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사 임원에 내리는 징계는 수위가 높은 순으로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로 나뉜다. 이 가운데 문책경고 이상은 중징계에 해당한다.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 임원은 연임이 불가능하고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정림 KB증권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3개월을,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경고’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이번 자전거래 사태로 CEO 중징계가 이뤄지면 증권사는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또 ‘CEO 리스크’가 이어지는 셈이다.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증권사의 랩어카운트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0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들의 일임형 랩어카운트 평가금액(계약자산)은 95조274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33조1782억원) 대비 28.5%(37조9033억원) 크게 감소한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금감원의 검사 및 제재는 그간 금융투자업계에서 암묵적인 관행으로 행해지던 불법 자전거래 행위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다만 중징계를 받은 CEO는 금융당국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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