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반대로 법안소위 통과 무산
수분양자 자금 마련 계획 다시 혼선 가중
둔촌주공 등 수분양자 혼선 불가피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부동산 정상화를 위해 추진해 온 ‘실거주 의무 폐지’가 국회 문턱을 또다시 넘지 못했다. 4만4000가구 수분양자들은 자금 조달 계획을 다시 짜야 함은 물론 자기 집을 전세 놓지 못하고 무조건 입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23일 국회 등에 실거주 의무 폐지를 위한 주택법 개정안은 지난 21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토위원들의 이견으로 법안 처리가 보류됐다. 야당은 올해 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전세사기가 무분별한 갭투자로 인해 발생한 만큼 실거주 의무는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1·3부동산대책을 통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이를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입주 즉시 2~5년간 실거주를 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2021년 2월 도입된 제도지만 분양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이번 법안소위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는 통과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그간 반대 입장을 밝히던 야당이 먼저 소위 안건으로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올리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주택을 처분하기 전까지만 실거주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을 중심으로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실패했다.

연내 통과에 기대를 걸었던 수분양자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입주 시기에 전세를 놓고 잔금을 치를 수 있어 자금 조달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1·3대책 발표 이후 미분양 우려가 컸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등 서울 주요 분양 단지에선 계약률이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내 통과가 불발되면서 자금 마련 계획을 다시 짜야할 상황에 놓였다. 정부 말을 믿고 기존 집 전세 계약을 연장했던 사람들은 전세 계약을 중도에 해지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만약 실거주 의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고, 당첨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가로 넘겨야 한다.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66개 단지, 4만3786가구에 달한다.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600가구)는 내년 2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강동헤리티자이’도 내년 6월이 입주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00가구) 입주도 1년 가량 남았다.

국토위는 소위를 한 차례 더 열어 주택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총선 전까지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불확실하다.

야당은 여전히 “실거주 의무 폐지는 절대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실거주 의무 폐지는 그야말로 투기 수요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꼴이다”며 “고금리나 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 당장 투기 수요가 늘어나진 않겠지만 이는 시쳇말로 방 안에 투기 수요, 가스를 채우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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